Daum 카페인쇄하기 인쇄 [[　　로맨스]][가인] 별의노래 제 1화 ~ 제 10화 | 　　닷컴퍼옴완결 [퍼옴·화수A] | 조회 17237 | 2008/01/08 18:36:06 [허락메일] 안녕하세요. 우선 메일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소설 보내드릴게요 ^0^ ＿＿＿＿＿＿＿＿＿＿＿＿＿＿＿＿＿＿＿＿＿ 닉네임 : 가 인 메일 : orwwor@hanmail.net 출처 : 우리들의요염한반란,여우팸 http://cafe.daum.net/cateyeghdus 팬카페 : http://cafe.daum.net/Lovegain 팸카페 : http://cafe.daum.net/cateyeghdus ￣￣￣￣￣￣￣￣￣￣￣￣￣￣￣￣￣￣￣￣￣ <별의노래 제 1화> “화이팅!!” 새로운 학교,그리고 첫 시작. 학교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나의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교가는게 그렇게도 싫었었는데, 나이를 먹고나니까 학교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내 나이,고작 17살이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처음 등교하게 되는 학교는 집에서 10분정도의 거리밖에 되지는 않지만, 난 이번 1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결심했다. 바로 내가 이번 해에 가장 먼저 결심한 목표인 것 이다. 사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건 저번 12월 달부터였다. 평소 운동 신경이 없던 난, 자전거라는 걸 배워 보지도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에게 지금 타고 있는 이 자전거를 나에게 선물해주며,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지금, 난 자전거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걸어서 10분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온 시간은 5분 정도이다. 학교 한편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난 가방을 바로 맸다. 드디어, 고등학교 첫 등교일이 시작된 것 이다. 이 학교는 그렇게 큰학교가 아니다. 작고, 허름하고, 거기에 소문도 그리 좋은 학교는 아니다. 그리고 여학생이라면 조금은 따질 교복도 예쁜편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음악단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도 음악단은 모두 하나씩 있는 부서일테지만, 나에게 이학교의 음악단은 소중한 곳이다. 나를 낳아준 엄마, 아빠가 처음으로 만난곳이니 말이다. 엄마는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난 엄마와는 다르다. 아빠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 없는 나에겐 이곳이 아빠와 같은 존재로 기억되고 있으니까. 정문 앞에서 두손을 불끈 쥐고 난 뒤, 나는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신입생들의 반배정표가 커다랗게 붙여있었다. 나는 내이름을 찾기 위해, 그 커다란 종이위에 작은 손을 올려놓았다. 손가락을 따라 나는 눈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내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강한경 : 1학년 2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 후 돌아서 걸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실내화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누군가가 내앞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벗지 못한 신발을 뒤로 한 채,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커다란 키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교복과 머리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 상처 투성이인 얼굴은 ‘나 문제아예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내려보는 그 녀석에게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 그렇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나에게 그녀석은 매섭게 말했다. “..비켜.” 나는 그말에 금세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말았다. 그녀석은 내어깨를 툭 치고 그곳을 빠져나가버렸다. 내 눈은 어느새 한쪽만 벗겨진 내 발을 향해 가있었다. 그리고 마저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은 뒤, 1학년 2반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교실에 도착한 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남자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여자아이들도 시끄럽게 떠들며 욕을 서슴치않게 하고 있다. 역시, 소문이 사실인 것 같기는 하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학생들의 질이 떨어지고, 성적도 좋지 않은. 그리고 말썽도 제일 많은 문제아들의 집합소. 잠시 내가 이학교에 왔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흔들고서는 자리를 찾았다. 내눈에 보이는 자리는 창가 바로 옆 자리였다. 얼른 의자에 가방을 걸어두는 나였다. 그리고 앉을려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저지하였다. “여기 내자리야.” 그 자리의 주인이라고 하는데, 도통 알수가 없다. 오늘 처음 등교하는 날인데, 침이라도 발라놨나? 가방도 없는데 자기 자리인 줄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난, 소심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 그래? 미안..” 그리고서 의자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다시 들고선 다른 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미 다른곳은 모두 차있었고, 뒷문 바로 앞 두자리만 남아있었다. 결국 난 자리에 홀로 앉아 축 쳐진 표정으로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으니까, 바로 앞에 앉아있던 파마머리의 남자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그아이가 날 보고있다는걸 느낀 난, 커다랗게 눈을 떴다. “웃긴애네.” 그 파마머리소년의 말이었다. 내 표정이 그렇게 웃겼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돌아서는 순간, 교실 앞문이 열렸다. 성큼성큼 들어오는 중년의 남자는 선생님인 것 같다. 그 이유는 ‘1학년 2반’ 이라고 적혀있는 출석부를 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교탁 앞에 서자마자 출석부를 내려놓고, 분필 잡는 선생님. 그리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김대식] 선생님이 적은건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다 적고 난후, 손을 탁탁 털며 우리가 앉아있는 교탁 아래를 바라보는 선생님이였다. 헛기침을 연신하다가 기침을 가라앉히고 말을 하는 선생님. “앞으로 너희들의 1년 담임을 맞게된 김대식이라고 한다.” 형식이지만 그래도 첫인사이니까, 나는 박수를 쳤다. 하지만 고요한 교실안에서 나혼자 박수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반아이들 중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앞에 앉아있던 파마머리소년은 나를 보고 피식 웃어보였다. 그렇게 반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내 자리 뒤로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래서 모두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나 또한 바로 고개를 돌렸고 말이다. 교실로 들어온 사람은 학생이었다. 불량스러워 보이는 교복에 머리또한 긴,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뭘봐.” 그녀석이었다. <별의노래 제 2화> 그렇게 까칠해 보이는 녀석은 난생 처음 보는 거였다. 비록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그녀석이 하고 있는 행동이 내 눈에는 그렇게 비추어지고 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그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찾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여진 의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덥석 앉아버렸다. 바로 내 옆자리로 말이다. 그녀석이 그곳에 앉고, 내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담임선생님은 말을 이으셨다. “출석부도 가져왔고, 이름 한번 불러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출석부를 핀 선생님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강한경.” 이라고 말했다. 저거는 분명 내이름인데, 하는 생각에 나는 손이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선생님은 수수한 웃음을 머금고,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불렀다. 내 앞자리 파마머리의 이름은 원한새. 나는 오늘 처음 알은 사실이 있다. 원씨라는 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 옆자리의 녀석의 이름이 불려진 것 같다. “진하늘, 진하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짐작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 그녀석이 진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선생님은 출석을 다 한 뒤, 아무말없이 교실을 나가버리셨다. 그 덕에 아이들은 다시 시장에 온 사람들처럼 떠들어대기 바빴다. 하늘이라는 아이는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벌써 곤히 자고 있었다. 옆사람이 자고 있으니까 나도 졸려오는 것 같다. 나는 자면 안된다는 생각에 볼을 작은 손으로 두드려댔다. “한경아!!”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내가 짐작하고 있는 사람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 곳을 바라보았다. 내 짐작은 딱 들어 맞았다. 그곳에는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지유와 주미가 보였다. 지유와 주미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로서, 내가 이학교에 올 수 있게 해 준 장본인들이다. 만약 이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엄마가 다니라고 강력히 추천했던 국립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 이다. 하지만 엄마를 같이 설득해주었고, 나를 믿고 이곳 음악단에 들기 위해 진학한 지유와 주미. 지유는 타고난 리듬감각으로 지휘를 잘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합창단에서 항상 지휘자를 맡기도 했다. 주미는 바이올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으로 만나 음악으로 친해진 사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벌써 친구가 된지 12년이나 되었다. 지유는 투덜거리며 나에게 터벅터벅 걸어왔다. “있잖아, 한경아. 우리 담임말이지. 너무 마음에 안들어.” 저렇게 말하는걸 보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게 확실하다. 퉁명스러운 지유의 태도와는 다르게, 주미는 그저 어깨만 들썩거릴 뿐이다. 그렇게 지유가 옆에서 성질을 부리는 걸 보고있던 난, 내 옆에 누워 자고 있던 하늘이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곧바로 지유와 주미를 붙잡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왜 그러냐면서 나에게 묻는 지유와 주미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방해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나도 몇 번 그런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참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 혹시 그아이도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자리를 피해준 것 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던 얘기 마저해. 선생님이 어떤데?” “그냥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나 너희반 되고 싶다.” 지유가 그렇게 말하자, 주미는 흥분했다. “그, 그럼 난!!” 이제는 어엿한 고등학생이지만 몇일 전까지만해도 중학생이었다는 증거일까? 아직도 유치한건 사실이다. 입이 삐죽 나와서는 지유를 있는 힘껏 째려보는 주미를 나는 애써 달래주었다. 그래도 이 셋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른스러우니까, 그렇게 우리 셋은 수다를 떨며 쉬는시간을 복도에서 지내게 되었다. 종이 치자, 나는 어서 교실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돌아섰다. “아!!” 내가 돌아섰을때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 처음에는 지유나 주미 둘 중에 한사람인줄 알고 있었지만, 그 둘이 아니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한번도 본적없는 아이였다. “아, 아프잖아.” “미, 미안!!” 나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 아이에게 사과했다. 새침떼기처럼 생긴 그 여자아이는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미애야, 얼른와!” 그 아이의 이름이 미애인 것 같다. 미애라는 아이는 나를 한번 돌아보더니, 1반 교실로 휙 들어갔다. 지유는 또다시 불만을 터트렸다. “저런애가 우리반이라니.. 참.” 이건 아니라면서 고개를 흔들고 들어가는 지유를 따라 주미 역시 들어갔다. 복도에 혼자남은 나는 얼른 교실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루 종일 선생님과 반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그럴까? 왠지, 오늘이 처음 만난 날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방과후가 되기 전까지 분명 자고 있었던 그녀석은 종례를 하려던 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비록 눈치채지 못하셨지만, 난 머리를 긁적거리며 계속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석은 종례가 끝나고 난 뒤에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장 늦게서야 가방을 매고서 복도로 나갔다. 1반은 이미 끝난지 오래여서, 지유와 주미는 가버린 뒤였다. 난 10분 거리를 홀로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조금은 풀이 죽어 복도를 걸어가던 나에게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쪽에 쓰러져 있는 두명의 남자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진하늘, 바로 내 옆자리였다. 또 한명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석과 싸운 녀석인 것 같긴 하다. 교복은 흙투성이였고, 상처도 둘다 깊어보였다. 그 두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아차! 하는 생각에 가방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잘 넘어지고, 다치다 보니까 가방에는 약이 항상 들어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걸 이녀석들에게 발라주기로 한 것 이다. 다행히도 대일밴드와 소독약이 있었다. 나는 그 두녀석에게 아낌없이 소독약과 대일밴드를 붙여주었다. 내가 치료하는 동안 그 두녀석은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치료를 마친 나는 이상한 나머지, 그 두녀석의 볼을 때렸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두녀석은 살아있었다. 아니.. 자고 있었다. 곤히 말이다. <별의노래 제 3화> 녀석들이 자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손을 탁탁 털고,신발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녀석들을 그냥 이곳에 내버려두고 갈것인가, 아니면 데려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솔직히 생판 모른채 하고 갈 수도 있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내 알바 아니라고 돌아서 버리기도 좀 그렇다. 하지만 녀석들을 내가 데리고 가는것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두고 간다면 아마 녀석들은 밤새 이곳에 누워 저렇게 자고 있을것이다. 한참을 그 두녀석을 내려보며 생각하던 난 결심을 하고 그 녀석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야!!”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대는 나였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머리도 어지럽고, 속도 좋지 않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를 부를 때 목이 따끔거린다는 증상이 생기고 말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소리를 질르지 않는 편인데, 이 녀석들을 깨우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 두녀석이 깊은 잠을 잔건 아니었던 것이다. 안그랬으면 난 고래고래 더 소리를 질렀어야 했으니까.. 감겨진 눈을 조심스레 뜨는 두녀석. 나는 녀석들이 깼다는 사실을 알고서 바로 일어났다. “여기 누워있으면 얼어죽을거야. 좀 있으면 날이 추워질테니까, 그러니까 집에 가서 자.” 그리고서는 난 돌아서서 걸었다. 이제 내가 할일은 모두 끝난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석들은 내가 복도를 빠져나가기 전에, 또다시 큰 소음과 함께 날 돌아서게 만들었다. 도대체 저두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나는 그곳으로 다시 달려갔다. 그 녀석들은 또 주먹다짐을 했다. “그만해, 너희 둘 다 그만하라고!!” 싸우는것도 좋아하지 않고, 말리는것도 좋아하지 않는 난, 그녀석들에게 소리쳤다. 가운데에 멍하니 서서 난 녀석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다 나가고 나서 싸워도 되는거잖아. 비록 내가 너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싸우는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거잖아.” 꽉 쥐어진 녀석들의 손을 나는 덥석 잡았다. 솔직히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다. “화해해. 내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화해하는 모습 보고 가는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그리고 녀석들의 주먹을 내힘을 맞닿게 했다. 녀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난 그 가운데에 서서 그저 실없이 웃기만 했다. 몇분을 그렇게 있었을까? 나는 혼자 민망해져서 두녀석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 덕분에 맞닿았던 손도 내려가버렸고 말이다. “벌써 어두워졌네, 가봐야겠다.” 나는 가방끈을 어깨에 올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나였다. 신발을 신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내 뒤에는 그 두녀석이 와있었다. 당황한 나는 비틀거리며 한쪽 신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넘어지려는 나를 누군가가 잡아주었다. 날 잡아준건 하늘이었다. “고, 고마워.” 똑바로 다시 선 나는 먼저 걸어가는 그 녀석들을 뒤쫒아 걸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나는 조금씩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고 있던 나는, 아찔한 순간을 겪고 말았다. 둔한 내발은 엉켜버렸고, 얼마 내려가지 못한 계단에서 굴러 버렸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1층에 도착할 때 나 역시 1층에 도착하게 되었다. 쓰러져 있는 나를 위해서 내려보는 녀석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너무 창피해서였다. 얼굴과 팔, 그리고 다리에는 상처가 났고, 묶여있던 머리는 다 풀려 산발이 되었다. 이렇게 넘어지는게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어서 창피한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또 넘어지니까 그것도 아닌가보다. 그렇게 바닥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그 두녀석이 잡아주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오늘 처음 보는 이 녀석들에게서 말이다.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나는 괜찮다며 녀석들을 교문 앞에서 보내려고 했다. 나에게는 집에 꼭 같이 가야하는 자전거가 있기 때문에. 하지만 녀석들은 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자, 자전거가 있어서 그래. 꼭 가져가야해.” “이 몸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이름 모르는 녀석이 말했다. 하긴,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서 자전거를 탄다는것도 참 웃길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놓고 간다면 내일은 걸어서 학교에 와야 할 것이다. 그럼 내가 세운 내 목표도 하루만에 무너져 내리는거고 말이다. 그런데 이미 난 자전거 주차장과는 멀어져 버렸고, 녀석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걷고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난 녀석들에게 물었다. “나를.. 왜 도와주는거야?” 하늘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이름 모를 녀석도 조용히 내 팔만 잡고 걸어갔다. 그래서 나도 어느새 입을 다물고 그 둘의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얼마나 그렇게 소리없이 걸었을까? “보답이야. 아까 치료해준거에 대한..” 이름 모를 녀석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에 나는 활짝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늘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너는?” “..마음대로 생각해.” 그말에 나는 좋게 생각하자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 집을 지나는 골목에 도착했다. 나는 걸음을 멈췄고, 날 지탱하던 녀석들도 내가 멈추자 같이 섰다. 손가락으로 집 대문을 가르키며 웃어보였다. “여기가 우리집이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허리를 푹 숙여 두녀석에게 인사를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던 녀석들이 나를 부축해줬다는 생각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세워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가.” 두녀석 모두 내 인사를 받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녀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싸우지 말고 잘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 나였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거실로 걸어갔다. 주방에 있던 엄마는 내 목소리 들리자 바로 거실로 달려나왔다. “한경아. 학교는 어땠... 한경아, 몸이 왜 상처 투성이야?” 엄마는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실없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학교에서 나오다가 계단에서 발이 엉켜서 굴러버렸어.” “괜찮아? 병원 안가도 되겠어?” “응. 괜찮아. 봐봐, 멀쩡하잖아.” 나는 몸소 팔과 다리를 구부려보며 엄마에게 괜찮다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안심을 하지 못하나보다. 걱정이 잔뜩 쌓인 얼굴로 나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야. 괜찮다니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웃으며 그 대답을 받아드렸고 말이다. <별의노래 제 4화> 그날 저녁엔 엄마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의 등에 얼굴을 기대고서는 물었다. “엄마.. 만약에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말야.” 아빠이야기를 하는 건 엄마에게 실례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나 자신에게도 한번쯤은 물었던 말이었으니까.. “아빠가 있었다면, 내가 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까?” “..한경아. 이 물음의 의미가 뭔지 물어도 돼?” “그냥. 그냥, 내가 어땠을까.. 궁금해서 그래. 대답해줘 엄마.” “..그건 니 선택에 달려 있지 않을까?” “내..선택?” 엄마는 돌아서 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넌 아빠처럼 음악을 좋아했을거야.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아빠처럼..?”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과연 아빠처럼..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어떻게 음악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음악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아빠처럼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착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도 음악하는 사랑하는 사람이었지. 너무 착해서 바보같았었고 말이야. 딱 한경이 니 나이에 엄마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고..” 처음이다.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게. “아빠가.. 첫사랑이었구나. 몰랐어.” “..그렇지, 한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 듣게 된 엄마아빠의 이야기. 엄마아빠는 내가 다니게 된 학교의 음악단에서 만나 처음으로 사랑한 사이였고, 그 사랑으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여러 보육원과 양로원을 다니며 공연을 했다고 한다. 나를 임신하게 된 엄마는 아빠가 더 이상 그런 공연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낳기 한달 전, 아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인해 엄마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그래서 난 엄마 뱃속에서 강제로 꺼내져 미숙아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게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의 결말이다. “이게 다야.. 이야기의 전부야. 이게.” 엄마는 어느새 눈물 가득 담긴 눈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음악단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말이다. 아빠를 빼앗아간 음악이 싫어서, 그래서 그 좋아하던 노래도 그만 두었고.. 나 또한 그렇게 아빠처럼 떠나버릴까봐 음악을 시키지 않을려던 엄마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이 빼앗아갔기 때문에, 그래서 아파도 아픈척 못하고 그저 속으로 아파왔을 엄마를 말이다. 눈물을 감추며 돌아선 엄마를 나는 살며시 안았다. “엄마.. 나는 그렇게 안갈게. 아빠처럼 그런 나쁜사람 안될게. 그러니까.. 아프지마.” “..한경아.”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 슬퍼보인다. “나는 엄마가, 다시 음악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아빠를 데려간것도 음악이지만..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음악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다시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면 니가 너희 아빠처럼..” “난 그러지 않을게. 엄마가 다시 음악을 좋아한다고해도 아빠처럼 그렇게 날 데려가지 않을거야. 그럴거야 분명히.” 약속했다. 엄마의 곁을 아빠 대신 지켜주기로.. 비록 나이가 어려서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지만, 곁에 있어준다는 것 그 자체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남긴 아픔을 내가 다 기쁨으로 바꿔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진짜 고등학생이 된지 하루가 흘러간 날이다.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나는 어제 다쳐 생긴 상처자국을 대일밴드로 가렸다. 보기 흉할지도 모르지만 상처가 훤히 들어나는것보다 밴드를 붙이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 그렇게 밴드를 붙이고 있던 나에게 어제의 그 사건이 문뜩 기억이 났다. 2층 계단부터 1층까지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이 말이다. 그 기억 때문에 멍하니 거울 속 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걱정마.’ 그렇게 다짐하고 난 후, 나는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자전거가 없다. 그래서 걸어가야 하지만, 그리 멀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대문을 닫고, 나는 조금씩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말이다. 학교에 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어제처럼 계단 앞에 섰다.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잘 올라가는 계단을 나는 못 오르고 있다. ‘강한경.. 한번 넘어졌다고 이제는 계단이 무서운거야?’ 스스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아.’ 나는 그렇게 나 자신에게 대답하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고 나니 교실과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 교실 문을 열었다. 바로 문 앞이 자리라서 나는 금방 앉을 수 있었다. 가방을 내려 놓는 나에게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 누군가는 내 앞에 앉는 파마머리 녀석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안녕. 한새야.” “어? 내이름.. 알아?” “어제 담임선생님이 출석할 때 알았어.”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파마머리 녀석, 한새. “너..”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한새였다. 그러면서 한새가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똑똑하구나!!” 이름 외운게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한새. 이 아이는 그게 똑똑한거라고 생각하나보다. 똑똑하다고해서 기분 나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내 머리를 비비적 거리던 한새는 갑자기 손을 내렸다. 그리고 급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근데.. 니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경이야. 강한경..” “아, 그래. 강한경이었지!” 꽤 재미있는 아이인 것 같아서 친해져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하나는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소란스럽게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보였다. 바로 나를 어제 부축해준 하늘이었다. 하늘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이 아침조회를 하기위해 교실로 들어오셨다. 시끄러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교탁을 여러번 내리치는 선생님. 드디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주목을 했다. 어제처럼 헛기침을 여러번 반복한 선생님은 아침조회를 시작했다. “어제가 첫 등교여서 그런지, 모두들 어수선할 것이다. 하지만 미리 해놓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반 선생님과 상의하에 오늘 특별부서를 정하기로 했다.” 특별부서라는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은 아무런 말없이 칠판의 구석 위부터 차례대로 무언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칠판에 쓰여진 것은 바로 각 부서의 이름이었다. 나는 칠판을 뚤어져라 쳐다보았고, 그 결과 음악단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3교시에 정할 것 같으니까,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부서를 생각해두기 바란다.” 나는 당연히... 음악단이다. <별의노래 제 5화> 3교시가 얼른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이루어 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3교시가 되었다. 교실은 소란스러웠고, 나 또한 들 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모두들 원하는 부서를 정했을거라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서를 정하도록 하겠다.” 하나 하나씩 채워져 가는 부서들. 나는 음악단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맨 마지막 순서가 음악단이었다. 그래도, 다른 부서가 다 채워졌으니까 경쟁 상대가 많이 줄어들어서 기분이 좋기도 하다. 선생님이 음악단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으라 했다. 그래서 손을 번쩍 올렸다.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들어서인지 내 이름이 가장 먼저 쓰여졌다. “자..... 음악단. 또 없나?” 선생님은 칠판을 보더니, 이름이 써 있지 않은 아이들을 출석부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원한새. 진하늘. 너희는 부서 없어?” 내 앞, 옆 자리 녀석들이 문제구나. “음악단 들어갈게요.” 한새는 음악단에 들어가겠다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하늘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진하늘 너도 음악단에 들어가라.” 담임선생님의 강제적인 부서 결정에도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반의 음악단은 한새, 나, 그리고 하늘이가 되었다. “6교시가 특활시간이니까, 모두들 자기가 들어간 부서에 가기 바란다. 이상.” 선생님이 나가고, 모두들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잠을 청하려고 하는 한새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한새야, 너 음악단에 왜 들어간다고 한거야?” “들어갈 곳이 없잖아.” “그것 때문에... 음악단에 들어온거야?”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책상에 누워버린다. 들어갈 곳이 없어서 들어왔다는 한새의 말에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한테 무척이나 소중한 곳인데, 아무 생각없이 들어왔다고 하니까... “한경아.” “어. 지유야.” 지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안마를 하는 시늉을 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아 참, 음악단은 누구누구 들어갔어? 우리는 5명이야. 나랑 주미 합쳐서.” “그래? 우리는... 3명인데.” “누군데?” 나는 눈짓으로 한새와 하늘이를 가르켰다. 지유는 그 두사람을 살짝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열심히 안할 것 같은 애들이네.” “그렇지?”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더니 지유는 기운을 내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가봐야겠다. 조금 있다가 6교시에 보자!” “응.” 지유가 1반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책상에 얼굴을 기대었다. 종소리가 쳤지만,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세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꿈을 꾸었다. 아주 오래전에 모습인 것 같은데, 내가 없는 것 같다. 그래,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모습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참 행복해 보이는데, 참 좋은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너무나 시리고 아파왔다. 이게 다 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나는 조용히 눈만 떴다. 떠진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고, 책이 젖었다. 비록, 그렇게 긴 꿈은 아니었지만 너무 좋았었던 꿈이었다. 아빠의 모습을 잠시라도 볼 수 있었으니까. 그 꿈을 꾸고 나서, 수업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갈 때까지 내 머릿속엔 아빠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야, 강한경!” “....어?” “왜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어. 음악실 가야지.” 지유와 주미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어. 그래.”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새와 하늘이는 아직도 꿈나라이다. “애들아. 나, 이 애들 데리고 갈테니까, 너희 먼저 가있어.” “음악실 어딘지 모르잖아.” “학교 안인데, 찾으면 나오겠지. 먼저 가.” 지유와 주미를 먼저 보내고 나서, 난 우선 한새를 깨우기 시작했다. “한새야. 일어나. 특활시간이야.” 계속해서 꿈틀거리던 한새는 몇 번을 반복해서 흔들었더니, 일어났다. 한새를 쉽게 깨우게 되어서 다행이었지만, 큰 복병이 남았다. 바로 하늘이었다.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난 뒤, 하늘이의 교복을 붙잡았다. “하늘아. 일어나. 특활시간이야.” 하지만 하늘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야 진짜 잠에서 깨어난 한새는 기지개를 피더니, 한경의 옆에 섰다. “벌써 6교시라니, 시간 참 빠르네.” “한새야. 나 좀 도와줘.” “뭐?” “아니, 하늘이도 음악실로 가야하는데 일어나질 않아. 그러니까...” 내가 한새에게 부탁한 건 바로 하늘이를 업고 음악실에 가자는 것이었다. 한새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싫다고 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하늘이를 등에 업으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그 때, 하늘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어, 잠깐만.” “왜.” “눈을... 떴어.” 나의 말에 한새를 다행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그리고 하늘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 났어?” 나는 하늘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특활시간이라서 음악실로 가야해.” 그리고 살짝 웃어보이고서는 교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나오자 뒤따라 한새와 하늘이 나왔다. 하늘이는 나를 내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음악실로 향했다. 나는 살짝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선 한새와 함께 하늘이의 뒤를 따랐다. 음악실에는 지유가 말했듯이 5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선... 선생님?” “어서 들어와라.” 선생님의 말에 나는 한새와 하늘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쳐다봤다. “앞으로 음악단을 담당하게 된 김대식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음악단 담당선생님이라는게 뭔가 의아하다. 왠지 노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해보이니까. “그럼 오늘은 각자 파트를 정해보자.” <별의노래 제 6화>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야겠지? 이름 순으로 하자.” 그러면,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한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피아노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서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 나는 강한경이라고 해. 잘 부탁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에 하늘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앉아 있는 어제 그 아이가... 그 아이의 이름은 아이들의 소개가 몇 차례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름이 정준이라고 한다. 하늘이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준이도 참 무뚝뚝한 것 같다. 말투에서부터 벌써 느껴진다. 지유의 마지막 소개가 끝나고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잘하는 악기를 하나씩 물어보았다. 그렇게 각자의 파트가 정해지자, 모두들 조금은 부담이 느껴진다는 표정이 되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이름을 적더니, 옆에 각자 맡은 담당을 나열했다. [강한경 - 노래, 배찬희 - 기타, 양미애 - 플루트, 원한새 - 바이올린, 임주미 - 첼로, 정준 - 바이올린, 진하늘 - 피아노, 한지유 - 지휘] 그런데, 의아한건 바로 하늘이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하늘이와 싸웠던 그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것도. 모든게 다 의아했다. “너희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음악단이니까. 어느정도의 실력을 길러서 공연도 하고, 음악회도 열고 그렇게, 활동하자.” 선생님의 말에 나와 지유, 그리고 주미는 네! 라고 크게 말했다. “근데, 선생님!” “어?” 찬희가 손을 들고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음악단 담당 선생님이세요?” 나도 무척이나 궁금했던 질문인데, 마침 잘됐다.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더니, 살짝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음악단에 있었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친구랑 이 음악단을 세웠지. 할 줄 아는게 없었던 난, 간신히 지휘를 배워서 지휘자로 활동했었어. 하지만, 그 친구는 음악적인 재능이 아주 많았지. 그 친구 덕분에 나도 음악을 참 좋아했었어.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어.”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이... 바로 우리 아빠였기 때문이다. 아빠와 선생님이 친구였다는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아빠의 주변 사람을... “이 학교에 오게 된다면, 그 때 내가 음악단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마음 속으로 그 친구에게 다짐했어. 그리고 지금은 2년동안 이렇게 음악단 담당하고 있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살짝 붉어진 얼굴을 말이다. 눈물을 참고 있었던걸까? 선생님은 서둘러서 음악실을 나가버렸다. 그 때, 하늘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 쪽으로 걸어가는걸 보니, 학교에서 나가려는게 틀림없다. “하늘아.” 나는 하늘이를 불러세웠다. 뒤를 돌아봐서 다행이지,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창피할 뻔 했다. “그래도, 수업 시간인데... 학교를 나가려는건.” “너하고는 상관 없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유의 성격상으로는 저런 말은 절대로 용납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저런 녀석하고는 말 섞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지유를 붙잡고서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그래. 미안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지. 하지만, 같은반이고 같은 부서인데 그렇게 상관없는 일도 아니잖아.” “가게 내버려둬.” 눈을 크게 뜨고서는 뒤를 돌아봤다. 삐딱하게 앉아있는 준이의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준이에게 말을 하려던 그 순간, 음악실 문을 열고 하늘이가 나가버렸다. 싸한 분위기가 음악실에 번지고 있을 때, 찬희가 말했다. “초, 초콜렛 먹을 사람!”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었나보다. 찬희의 말에 주미가 손을 번쩍 들어서는 달라며 두손을 모았다. 초콜렛을 받아든 주미는 기분이 좋아져서는 씽긋 웃어보였다.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밖으로 나온건, 하늘이를 잡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나간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많이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를 찾기 위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달려간 나는 하늘이의 교복을 잡았다. “잠깐만.” 멈춰선 하늘이는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무섭게 느껴진다. 나는 그 눈빛에 기가 죽어서 그런지, 교복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래도, 이제는 친구이니까...” “친구?” 하늘이의 매서운 말투에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나였다. “난, 너 같은 친구 없어.” 하늘이의 말에 내 표정이 굳어졌다. 나 같은 친구... 도대체 어떤 친구이길래? “하늘아.” “너 같은 애들은, 다 똑같아. 아끼는 척, 좋아해주는 척 해주는거.” 하늘이의 표정이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도 비록 차가워 보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가버리는 하늘이었다. 하늘이를 잡으려고 다리를 땅에서 뗐다. 그런데 그 순간, 다리에서 무언가 딱딱한게 느껴져 왔다. 무릎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다리가 아픈 나머지,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입술을 깨물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무릎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었지만, 하늘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하늘이를 놓치고 말았다. 방과후. 오늘은 지유와 주미가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다리 때문일까? 그 이후로 계속해서 다리가 삐그덕 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뼈가 딱딱해지는 느낌이 든다. 교문 앞에 다 나와서, 나는 엉성하던 걸음을 멈췄다. 내가 멈추자, 지유와 주미도 뒤따라 멈춰섰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유야, 주미야. 먼저 갈래?” 두 사람은 내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표정이 별로 안 좋아. 어디 아파?” “응. 아픈 사람 같아.” 나는 살짝 웃어보이고선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다리가 조금 아파서, 조금 쉬었다가 갈려고. 먼저 가.” “괜찮겠어?” “응. 괜찮아.” 날 걱정하는 지유와 주미를 먼저 보내고선 나는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무릎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별의노래 제 7화> 한참동안 그렇게 서 있던 나는 어릴적 자주 같던 병원으로 걸음을 돌렸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료실 문을 벌컥 열고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내가 유치원 때부터 다니던 병원인데, 하도 병원을 자주 오다보니까 이제는 친숙하게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 한경아. 오늘도 넘어져서 온거냐?” “아니요. 오늘은 안 넘어졌어요. 그런데, 그냥 무릎이 이상해서.” “무릎이? 왜?” 나는 할아버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차분히 설명했다. “사실, 어제 계단에서 굴렀어요. 발이 꼬여서.. 그리고 오늘은 친구들이랑 집에 걸어가는데, 갑자기 무릎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딱딱하게?” “그냥 검사 한 번 해볼려고요. 그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왜?” “괜히, 검사 받은거 알면 걱정할거에요. 별 일 아니겠지만, 그래도 걱정하게 하기는 싫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나의 비밀 검진은 시작이 되었다.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몸을 위한 일이니까 뜻깊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자고도.. “검사 결과는 아마, 빠르면 일주일 뒤 아니면 이주일 뒤에 나올 것 같구나.” “그렇게나 늦게 나와요?” 할아버지의 대답은 그렇단다.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듯이. 조금 늦더라도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란다. “이만 가볼게요.” “그래, 조심히 가렴.”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하고선, 씩씩하게 병원을 빠져나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그런지 다리도 조금 괜찮아 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신이 난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가던 난, 준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안녕.” 나는 먼저 웃어보이며 환하게 인사해보였다. 하지만, 준이도 하늘이처럼 나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조금은 상기된 얼굴을 한 채로 준이에게 물었다. “저기, 궁금한게 있는데...” 한참을 망설이던 난, 입술을 꾹 깨물고서 말을 이었다. “너하고, 하늘이는 왜 사이가 안 좋은거야?” “....알아서 뭐하게.” “그냥, 친구니까. 저번에 너희 둘이 싸우는것도 목격했었고...” 나는 준이의 매서운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깨고 준이가 대답했다. “원래는, 친구였어. 진하늘하고 나.” “어?” “그 애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나랑 진하늘은 아직도 친구이겠지..” 죽은 아이라니, 아리송하다. 나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준이를 응시했다. “중학교 때, 세사람이서 같이 다녔었어. 진하늘, 나, 그리고 그.... 그렇게 같이 다녔었는데, 어느날 그 아이가 죽어버렸어.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아팠던거야. 배신 당한 것 같았어. 우리 두사람은..” 준이의 말에, 난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렇게 굳어져 있던 날 보며 준이는 말을 이었다. “왜 진하늘이, 널 싫어하는지 알려줄까?” “왜....” “니가 하는 행동이, 그 아이하고 많이 닮아있어서 그러는거야. 친구라고 자기 일처럼 나서는 것부터, 언제나 먼저 인사하는 것까지. 그래서 싫어하는거야.” “내가... 닮아?” 준이는 입술을 깨물더니,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나는 준이가 걸어간 곳을 돌아봤다. 준이의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슬퍼보인다. 하지만, 나까지 우울해질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선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오늘도 왜 이렇게 늦게 온거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난 엄마에게 음악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들어갔니?” “응. 예전에 엄마가 했던 그 역할, 내가 한다?” “...잘 됐네.” 엄마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아 참, 우리 담임선생님이 음악단 담당선생님이거든? 근데, 알고 봤더니 아빠 친구분이셨대. 아빠랑 같이 음악단 창설한 분. 지휘하셨다고 했는데... 엄마도 기억나?” “정말... 음악단 담당선생님이 그....” 엄마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응. 김대식 선생님. 왠지 1년동안 참 도움이 될 것 같은 선생님이야. 아빠 친구라서 그런가?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엄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그렇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까, 검진을 받았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사실 말하려고 했던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나 때문에, 엄마가 슬퍼하는게 너무 싫으니까. “근데, 어제 다친 곳은 괜찮아? 걷는 모습 보니까, 아직도 아픈 것 같던데..” 역시, 엄마는 다르다. 한 눈에 내가 어디가 안 좋은지 딱딱 알아 맞추니 말이다. 하지만, 난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 그냥 성장통 같은 건 가봐.” 성장통이라는 말에, 엄마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성장할 나이이니까, 성장통이라고 해도 믿을만하다. 만약, 내가 성인이었다면... 전혀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무 아프면 엄마한테 꼭 말해.” “아, 알았어.” 난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다 거짓말이라서 그런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난 조금 풀어진 다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다. 침대에 다리를 뻗고 누운 난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 때, 아까 준이의 말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죽은 아이 때문에 멀어졌다는 준이와 하늘이의 이야기 말이다. ‘니가 하는 행동이, 그 아이하고 많이 닮아있어서 그러는거야.’ 내가 그 아이와 닮았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어쨌든 그 아이는 두 사람의 친구였으니까. 나는 아직 그 두 사람의 친구가 아니니 말이다. “아, 모르겠다.” 옆에 말아두었던 이불을 다시 펴서 다리 위에 덮었다. 그리고선 고스란히 침대에 누웠다. 푹신푹신해서 그런지,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다리도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에 대한 내 생각까지도.. 다음날. 교복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가지고 가려던 난 결국 오늘도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 어제 다리가 아팠던 관계로 자전거를 타는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마 안되는 거리라서 다행이다. 걷는것도 곤욕이니까 말이다.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에 오는 동안,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가 너무 어수선하다고 해야할까?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다. <별의노래 제 8화> 교실은 언제나 소란스러운 대화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교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조회를 하기 위해 들어왔다. 선생님의 얼굴빛이 어둡게 보인다. 하지만, 이내 웃어 보이며 애들에게 말을 하는 선생님이었다. “자, 오늘은 학교가 일찍 끝날 것 같다.” “정말요?” “왜요?” 모두들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외치며 환호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말린 뒤에야 다시 말을 이을 수 있었다. “학교에 외부 손님이 오시거든. 그래서 너희를 일찍 귀가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환호소리에 난 선생님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수업은 4교시까지 이어졌고, 그 이후 모두들 집으로 귀가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간 시간, 음악실로 향했다. 그런데, 외부 손님이 온다던 담임선생님의 말과는 다르게 손님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오겠지, 하면서 음악실로 걸음을 옮기는 나였다. 그렇게 음악실로 걸어가던 난, 문이 열려 있는 교장실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교장실에는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쁘게 생긴 여러 명의 남자들이 말이다. 나는 교장실 문에 기대어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엿들었다. “이봐, 아저씨.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이보세요. 여기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조금의 여유라도 주세요. 꼭 돈 갚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학교를 내버려두세요.” “내 돈 주고 산 땅에, 왜 학교가 있어야 하는 건데. 아니면 얼른 자릿세를 내던가.” 나는 입술을 깨물고선 고개를 숙였다. 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당장은...”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지. 우리 보고 도대체 언제까지 참으라는 거야.” “이번, 이번 해 동안은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번 해 동안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폐교만은...” 폐교라니.... 말도 안 된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선 간신히 나오려던 말을 참았다. 그 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 쪽을 쳐다보았다. “하, 한경아.” 담임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 채, 굳어져 서 있었다. 그렇게 서 있던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가 서 있는 교장실 문으로 걸어왔다. “왜... 집에 안가고 여기 있어?” “...음악실에 가려고요.” “그렇구나. 그래.” 선생님은 내 눈을 피한 채, 대답했다. 그 순간, 교장실 반대편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그 남자들이 줄줄이 나왔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돌아 서 있었다. “얼른, 처리 하십시오.” 담임선생님에게 남기고 간 말이었다. 그 남자들이 복도를 다 빠져 나가고서야 난 담임선생님을 다시 쳐다보았다. 선생님의 표정은 아침보다도 더 굳어 있었다. “선생님...” 나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불렀다. 그리고서는 들은 그대로 물었다. “학교가... 폐교 된 다는 거.. 진짜에요?” “아, 아니야. 폐교는...” “진짜, 진짜로 폐교 같은 거 안 되는 거죠?” “어... 그래.”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다 들었는데 말이다. “..늦었다. 어서 가봐야지.” “...네. 안녕히 계세요.” 결국, 난 음악실에 가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교문을 빠져 나가면서 수 십 번도 더 학교를 뒤돌아보았다. 진짜로 이대로 문을 닫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가는 길, 길을 잃어버린 강아지를 발견했다. 아주 귀엽게 생긴 치와와였다. “찬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잔뜩 짐을 들고 오는 작은 남자 아이가 보였다. 헉헉거리며 멈춰선 그 남자 아이는 다름 아닌 찬희였다. 강아지 앞에 서있는 나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소리쳤다. “어! 너는...” “아, 그게 있지.” “니가 찾은 거야?” “어?” 찬희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자신의 강아지를 찾아준 줄 알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아, 아니.. 내가 찾은 게 아니라 이 강아지가 여기 있더라고.”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면서 강아지를 가르켰다. 찬희는 강아지를 품에 안더니, 씨익 하고 웃어보였다. “아무튼 고마워!” 손을 열심히 흔들며 강아지와 함께 가는 찬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아이는 참, 천진난만한 아이인 것 같다. 어제 초콜렛을 내미는 것을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나는 살짝 웃어보이고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걸음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바로,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가끔 마음이 복잡하거나, 우울할 때 오는 곳인데, 그네를 타고 앉아 있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언제나와 같이 그네에 올라탔다. 한참을 그렇게 그네에 앉아있던 내 눈에, 누군가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 형체는, 하늘이었다. 나는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이를 쳐다보았다. 그네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늘이가 날 쳐다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눈을 피해버렸다. 그리고선 땅을 바라본 채 멈춰 서 있었다. “여기에 니가 왜 있어?” “어?” 나는 하늘이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손을 얌전히 두지 못했다. “그냥... 집에, 가던 길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하늘이를 불러 세웠다. “저기.” 그리고 하늘이가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선 물었다. “넌... 내가 왜 싫은거야?” 진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정말 준이의 말이 사실인지 알고 싶었다. “혹시... 그 죽은 아이랑 내가 닮아서 싫은거야?” “뭐?” “그 애처럼 친구가 되었을 때, 내가 떠나버릴까봐 싫은거야? 그래서.. 준이하고도 멀어진거야?” “니가 그걸 어떻게 알지?” “얼른 대답해줘. 난, 그 대답이 듣고 싶어.”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죽은 아이를 생각해야 하니까, 충분히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꼭 듣고 싶다. 하늘이가 날 그 아이의 모습 때문에 싫어하고 있는지. <별의노래 제 9화> “넌, 내 친구 아니야.” “뭐?” “친구가 아니라고.” 나는 하늘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늘이는 나의 얼굴을 보더니, 몸을 돌려 공원을 빠져나갔다. 기분이 축 쳐졌다. 하늘이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온거야?” “학교에서 일찍 끝났어.” 엄마는 내 안색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아프니? 표정이 안 좋아.”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봐. 좀 자야겠어.” 그렇게 말한 뒤, 난 살짝 웃어보이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학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충분히 아빠의 추억에 힘들어 하고 있기에, 말할 수 없다. 학교가 그 지경에 처해있다는 걸 말한다면 엄마는 더 우울한 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침대에 누워, 난 천장을 바라보았다. “친구....” 하늘이가 날 그렇게 싫어하는지 몰랐다. 적어도 그 아이 때문이라는 답이라도 나와줬으면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니, 참... 다음날.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몸이 뻐근해지도록 잔 것 같다. 기지개를 피며 침대에서 일어난 난,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다. 느긋하게 등교 준비를 해도 될 시간이다. 교복을 갈아 입고서 머리를 빗은 뒤, 가방을 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서는 씨익 웃어보였다. “화이팅!” 나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한 뒤, 집을 나왔다. 그렇게 마당을 지나쳐 나오는데 내 눈에 자전거가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탈 자신이 없다. 내 목표였지만, 이제는 깨져버려서 그런걸까? 나중에 조금 더 괜찮아지면 그 때, 타도록 해야겠다. 난 학교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들려줬던 노래인데.. 그 노래가 정말 좋았었는지, 아직도 잊지 않고 가끔 이렇게 흥얼거리고는 한다. “한경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주미였다. 주미는 어느덧 내 옆에 와서는 활짝 웃어보였다. “왜 이렇게 일찍 가?” “오늘 일찍 일어나서, 너는?” “음... 나도.” 머리를 긁적이던 주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두 사람은 발을 맞추어 걸었다. “그런데, 지유는 어디 갔어?” “아직 자고 있지. 원래 늦게 일어나잖아.” 하긴, 어렸을 때도 지유는 항상 지각쟁이였다. 그래서 지각 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 좋다.” “응?”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음악단에 들어갔다는게 너무 뿌듯해서라고 해야할까? 너무 좋은거 있지?” 주미는 들 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주미의 말에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학교가 폐교된다는 사실은 주미에게 알려준다면 주미의 웃음도 금세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나의 표정을 보았는지, 주미가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 아니야.” 나는 살짝 웃어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미는 나를 살피더니, 내 손을 잡아주었다. “힘내라. 강한경!” “응?” “힘내라고, 알았지?” 힘내라는 주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져왔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힘내라는 주미의 말이... 니 옆에는 항상 내가 있으니까, 걱정마. 라고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주미와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로 곧장 향했다. 교실엔 한새가 홀로 앉아 있었다. “안녕, 한새야.” 나는 웃으며 한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한새의 표정이 밝지가 않다. 난 가방을 의자에 걸어 놓고선, 한새의 옆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일도.”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내고선 책상에 누워버리는 한새. 도대체 무슨 일인걸까? 항상 밝게 웃던 아이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괜스레 걱정이 된다. “정말로...” 내가 다시 한 번 물으려고 할 때, 한새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음악단...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한새의 말에 내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음악단을 그만 두다니.” “...부모님이 반대해. 공부나 해서 대학이나 가라고 하더라.” 그 말에 난 울컥해서 한새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린 아직 해보지도 않았잖아. 펴보지도 못한 날개를 꺾어버리면 안 되는거잖아.” “내가 날개짓을 하고 싶어해도 부모님이...” 나는 두 손으로 한새의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잡았더니, 한새는 커다랗게 떠진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럼, 그 날개짓으로 부모님을 설득하자. 니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드리는거야.” “뭐?” “공연을 하자. 음악단 아이들하고 다 같이. 부모님들도 초대하고, 선생님들도 초대하는거야. 그리고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돌아니면서 위문공연도 하고.. 그럼 날개짓을 할 수 있을거야.” “...강한경.” “나는 걸 보고 싶어. 내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날고 싶어.” 어느새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직은 서로 모르는게 더 많지만, 언젠가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을거야.” 내 말에 굳어져 있던 한새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어제의 모습처럼 다시 웃고 있었다. 내 눈물도 한새의 웃음 덕분에 모두 들어갔다. 아직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아서 모르는게 더 많지만, 정말 언젠가는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떨어지면 슬플만큼,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힘내.” “고맙다.” 누군가에게 힘을 내라며 응원해 줄 수 있을 때, 그 때, 바로 그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있지 않을까? 주미가 나에게 힘내라고 말했던 것도, 내가 한새에게 힘내라고 말한 것도, 모두가 친구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 같다. <별의노래 제 10화> “선생님.” 나는 아까 한새와 한 말을 선생님께 전하러 교무실로 왔다.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웃어보이며 물었다. “무슨 말 하려고?” “저.. 공연을 열려고 하는데.” “공연?” “아직 연습도 안해봐서, 애들하고 얼마나 호흡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공연을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한새는,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신다고...” “한새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더니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우리는 아직 연습 한 번 해 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연이라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단으로 남을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방법이다. “선생님...” “그래. 실력보다는 노력이 우선이지. 공연, 하자.” 선생님의 말에 내 입은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는 선생님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특히... 한새에게. 학교의 정규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음악단원들을 모두 음악실로 불렀다. 바로 학교를 빠져 나갈려고 했던 하늘이는, 나에게 붙잡혀 음악실로 와야 했다. 모두가 음악실에 모였다. “너희한테 전할 소식이 있다.” “소식이요?” 언제나와 같이 초콜렛을 입에 물고 있던 찬희가 물었다. “그만 좀 먹어라.” 그 옆에 있던 미애는 찬희에게 꾸중을 했다. 찬희가 입에서 초콜렛을 떼자,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공연을 할까 하는데. 뭐, 연습은 이제부터 조금씩 하면 되니까.” “공연이요? 우린 이제 막 만났는데, 무슨수로 공연을 해요.” 미애의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린 아직 미흡한 점이 훨씬 많아. 하지만, 그 점을 보안하기 위해선 많은 연습도 해야하지만, 실전도 많이 경험해야 해.” “그렇긴 하지만...”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 주미가 두 손을 불끈 쥐어 들어올리며 말했다. 지유도 주미의 말에 찬성을 한 듯 같은 자세를 취해보였다. “그럼 어디서 공연을 한다는거죠?” 준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어. 하지만, 위문 공연을 다닐 예정이다.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돌면서.” “그런데, 저희는 악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공연을 하겠어요.” 그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악기를 사달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은 학교의 자금이 많이 모자란 상태이니까.. “...악기라면, 내가 구해볼게.”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의 눈은 모두 나에게로 고정되었고, 모두들 놀란 눈치이다. “바이올린에, 첼로 그리고 플루트까지 다 구할 수 있겠어?” “예전에 아빠가 사용하셨던게 있어. 집에 그대로 있으니까, 사용할 수 있을거야.” “그래. 그러면 그게 좋겠다.” 선생님도 나의 말에 찬성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선 두 손을 맞닿게 해서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자. 이렇게 방과 후에 모여서 한, 두시간 정도 연습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늘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저런 녀석이 음악단이라니... 참. “그럼 이만 해산.” 선생님의 말에 모두들 음악실을 빠져 나갔다. 맨 마지막에 나온 선생님을 난 불렀다. “저기, 선생님.” “어. 한경아.” 나는 선생님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다독여주었다. “아버지께서 음악을 좋아하셨나보구나. 그렇게 흔쾌히 해준다니 선생님이 정말 고맙다.” 난 입술을 깨물고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혹시 강석규라는 사람이랑, 김미숙이라는 사람을 아세요?” “뭐?” “...아세요?” “한경아.. 니가 그걸 어떻게...” “우리, 엄마 아빠거든요.” 선생님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럼 그 아빠가 바로...” “아빠가 살아있었을 때의 친구를 만나게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사진으로만 봤던 아빠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석규... 강석규.” 선생님은 나를 품에 안았다. 선생님의 품은 꼭 아빠처럼 느껴졌다. 한번도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아빠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자랐을까. 하나도 변한게 없어.” “선생님..” “꼭 19년 전 석규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선생님은 진정 우리 아빠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어깨로 스며든 선생님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를 안고서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난, 멍하니 지켜보았다. 비록 19년 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 속에 항상 아빠가 존재 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아빠는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아빠를 추억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난 정말 행복하다. 그 날 저녁. 바닥에 앉아 옷을 개고 있던 엄마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엄마..” “응.” “있지. 우리 담임 선생님...” “선생님이 왜.” “예전에, 엄마랑 아빠랑 같은 음악단이었대.” 내 말에 개던 옷을 멈추고선 나를 쳐다보는 엄마였다. “그, 그게.. 진짜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반쯤 고여 있었다. 쇼파에 앉아 있던 난, 바닥으로 내려가 앉아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왜 울어.” “정말로.. 있었구나. 아무도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엄마.”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빠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엄마를 안고서 다독여주었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이미 멀리 떠나 가 버린 사람을 기억해준다는 것.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Daum 카페인쇄하기 인쇄 [[　　로맨스]][가인] 별의노래 제 11화 ~ 제 20화 | 　　닷컴퍼옴완결 [퍼옴·화수A] | 조회 4778 | 2008/01/08 18:37:57 ＿＿＿＿＿＿＿＿＿＿＿＿＿＿＿＿＿＿＿＿＿ 닉네임 : 가 인 메일 : orwwor@hanmail.net 출처 : 우리들의요염한반란,여우팸 http://cafe.daum.net/cateyeghdus 팬카페 : http://cafe.daum.net/Lovegain 팸카페 : http://cafe.daum.net/cateyeghdus ￣￣￣￣￣￣￣￣￣￣￣￣￣￣￣￣￣￣￣￣￣ 별의노래 제 11화 연습을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서로 맞춰 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정도의 연습이라면,충분히 노력은 가상하다. 그리고 처음 해 보는 공연이라 해도 그렇게 불만족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만큼 우리는 열심히 연습했다. “아, 드디어 내일이네.” “너무 떨려. 사람들 반응이 어떨까?” “우리에겐 사람들의 반응보다, 부모님들의 반응이 더 중요할거야.” 미애의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니까. “각자, 연습 해 오는거 잊지마. 내일이 토요일이라서, 연습 할 시간도 없이 바로 가게 될거야.”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큰소리로 대답했다. 하늘이는 대답없이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그래도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연습에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 주었다. 그 것만으로도 난 그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집에 오는 길, 지유와 주미 그리고 난 내일 있을 공연에 대한 부담감에 한숨만 내쉬었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럴리가... 잘 할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했잖아.” “그렇겠지?” 주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주미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긴장을 풀라고 위로했다. “아, 근데... 내일 부모님들이 다 오실려나?” 지유의 말에 난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에게 그렇게 전하라 했지만, 부모님이 몇 분이나 오실지도 확실치 않다. 특히, 한새의 부모님이 오시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우리 중 가장 힘든게 바로 한새인데.. “만약에 우리가 잘못하기라도 하면, 한새는...” 주미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다. “괜찮을거야. 잘 하면 돼지. 우린 잘 할거야. 그치?” “당연하지!” 지유는 두 손을 번쩍 올려보이며 웃어보였다. 그 행동에 주미도 살짝 웃어보였다. 잘 될거라고 믿어야 한다. 그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해 낼 수 있을테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바빴던걸까? 아마도 교복을 단정하게 입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서 그런 것 같다. 교복을 다 입고 나서, 난 거실로 나왔다. 문 앞에 내 가방을 들고 서 있던 엄마는 나를 보며 씽긋 웃어보였다. “어때?” “깔끔해.” 그 말에 나 역시, 웃어보였다. 가방을 나에게 건네는 엄마에게 물었다. “오늘 공연 보러 올 거지? 꼭 와야 돼?” “당연하지. 우리 딸이 처음으로 하는 공연인데.” “잘 할게. 그러니까, 예쁘게 봐 줘.” “응.”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집을 나왔다. 왠지 기분이 들 떠있는 걸 보니까, 공연이 잘 될 것 같다. 꼭, 우리 모두가 음악단의 일원으로 남아야 할텐데..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나였다. 학교의 수업은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도 다른 날보다 훨씬 빨리 흘러간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한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을 안 한다고 하긴 했는데, 이상하게 목이 뻐근하다.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가? 모두가 모이고 나서, 한 번의 연습을 마치고 양로원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양로원이라서 걸어서 가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악기를 들고 가던 중. 난 어깨를 으쓱할 만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새의 바이올린을 주미가 들고 있었고, 주미의 첼로를 한새가 들고 있는 장면을 말이다.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상하다.” “지휘봉은?” “가방에 넣어 뒀어.” 지유는 웃어보이며 나에게 답해주었다. 드디어 양로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그 곳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우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서둘러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 곳의 휴게실에는 작은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피아노가 있어서 우리에게는 더 더욱 좋은 장소이고 말이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무대에 올라오니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들어 오니까, 더 떨려 온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휴게실 가득 들렸다. “자자, 저희는 바로 옆에 위치한 고등학교의 음악단 입니다. 어르신들께 공연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예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끝 낸 선생님은 우리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걸 본 지유는 지휘봉을 높게 들어보이더니, 하늘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늘이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고, 차례대로 연주가 진행되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휴게실 안은 온통 내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기분이 뭐라고 해야할까? 꼭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정말로 하늘을 난다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노래를 부르던 도중, 무대 아래를 쳐다보게 되었다. 엄마와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표정이 참 편해 보였다. 노래가 후반부로 갈 수록 난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아이들 역시 모두들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 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났다. 첫 공연이었는데 아쉬울게 없었던 공연인 것 같다. 우리가 연습했던 만큼의 실력이 나왔으니까. 어르신들의 박수 소리와 부모님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새의 부모님이 무대 가까이로 걸어 오셨다. 우리들은 인사를 하자, 한새의 부모님은 살짝 고개 인사로 받아주셨다. “한새야...” “하게 해 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한새의 부모님이었다. 그렇게 잠시동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때 한새의 부모님의 고개가 움직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우리들 모두 다 얼굴에 웃음이 번져왔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해야지.” 역시, 부모님은 어쩔 수 없는건가보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한새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부모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식에게 어쩔 수 없이 질 수 밖에 없는건가보다. 자식이 원하는 걸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자식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그런게 바로 부모라는 건가보다. 나도 얼른 커서 부모가 되어 보고 싶다. 언젠가 나의 소중한 아이가 원하는 일이 생길 때, 엄마처럼, 그리고 한새의 부모님처럼. 웃으면서 허락 해 주고 싶다. 별의노래 제 12화 공연을 끝 마치고, 아이들과 학교로 돌아왔다. 다행히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한새도 음악단에 남게 되었다. 그 것 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축하해. 음악단에 남을 수 있게 된 걸.” “고맙다.” “그럼 난 선물.” 찬희는 한새에게 초콜렛을 내밀었다. 한새는 피식 웃어보이더니 초콜렛을 받았다. “맨날 초콜렛이네. 지겹지도 않아?” “초콜렛은 안 지겨워. 맛있잖아.” 씽긋 웃어보이면서 초콜렛을 입에 무는 찬희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다리가 저려 오기 시작했다. 꼭 쥐가 난 것처럼 다리가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갑자기 멍하게 서서 다리를 만지작 거리는 나를 보더니, 지유가 괜찮냐며 물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번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 같다. 땅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간신히 한 걸음을 옮긴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반대편 다리를 땅에 내딛었다. 그 때, 발이 꺾이면서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다. 내가 넘어지자 앞에 가고 있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은 서둘러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하지만, 다리가 뼜는지 욱씬거린다. 그리고 무릎에서는 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어서 양호실로 가자.” 선생님은 내 팔을 붙잡고서는 내 몸을 지탱해주었다. 그런데 그 때, 하늘이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당황했던 난 조금 주춤거렸지만, 이내 하늘이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모두에게 이렇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이다니, 창피하다. 양호실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은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내 다리에는 빨간 소독약이 번졌고, 그 위로 하얀 붕대가 감겼다. “갑자기 왜 넘어진거야?” 미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넘어진거야.” “다리에 쥐가?” “응.” 옆 침대에 앉아 있던 주미는 내 앞에 앉더니,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웃어보이며 말했다. “다리에 쥐가 나면, 이렇게 주물러주면 돼. 그러면 쉽게 쥐가 풀려.” 주미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흘러 내려 왔다. 넘어진게 창피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뭔가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어서. 집에 오늘 길에도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 했다. 집에 들어가자 엄마는 내 다리를 보더니, 굳어진 표정을 한 채로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 했던 다리가... 넘어졌니?” “어. 다리가 꼬여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나를 부축해 쇼파에 앉혔다. 그리고 이내,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 엄마.” “혹시 다리에 쥐가 났었니?” “어?”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엄마에게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아, 아니. 그냥 다리가 꼬여서...” 무슨 이유일까,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내가 넘어져서 온 것 때문일까? 공연까지만 해도 좋았던 엄마의 얼굴 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만 주물러도 돼.” “혹시, 다리에 자주 쥐가 생기지는 않지?” 엄마의 물음에 나는 살짝 눈이 커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만약에.. 다리에 쥐가 많이 생기면 엄마한테 말해야 돼. 알았지?”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알았어.” 다음날. 엄마가 학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난 극구 사양 했다. 다리 다친게 뭐가 그렇게 잘난거냐며 엄마에게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다. 다쳤다고, 누군가에게 의지 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내 힘으로 하고 싶다. 원래 5분 거리이던 학교가 오늘은 15분이 되었다. 다리에 감은 붕대가 왠지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교문에 들어서자, 내가 도움 없이 걸어왔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교실로 가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많이 느린 속도이지만, 그래도 속도만 느릴 뿐, 다른 건 똑같았다. 교실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 놓고 의자를 뺐다. 먼저 와 있던 한새는 돌아서서 나를 쳐다 봤다. 자리에 앉은 나는 한새에게 웃어보였다. “다리는 괜찮냐?” “응. 괜찮아.” 한새는 다행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봤다. 그런 한새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늘이는... 아직 안 왔어?” “오긴 했는데, 사라졌어. 학교 어딘가에 있겠지.” 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 교실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그 다리로 어딜 가게?” “괜찮아. 그냥 다리에 붕대만 감은건데, 뭐.” 나는 한새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교실을 빠져 나왔다. 하늘이가 학교에 있을거라는 추측을 하고선, 이리저리 느린 걸음으로 걸어다녔다. 그리고 한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하늘이를 찾을 수 있었다. “하늘아.” 나는 하늘이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내 느린 걸음 때문에 하늘이가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하늘이는 가지 않았다. 드디어 하늘이 앞에 제대로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어제 저녁 내내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하늘이가 도와 줄 줄은 몰랐다. 의외의 사람이라서 그랬던걸까? 왠지 더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 넘어졌을 때. 부축해준거..” 하늘이는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무뚝뚝한 녀석은 난생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 선 하늘이에게 물었다. “있잖아. 니가 어제 나 도와줬던 거.. 니가 나 친구로 생각해서 그런 거 맞지?” 난 그 때 그렇게 느꼈었다. 하늘이가 날 친구로 생각했을거라고. “좋을대로.” 하늘의 대답은 아리송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무척 좋은 대답이었다. 별의노래 제 13화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혼자서 빠져 나왔다. 사실 지유와 주미가 도와주겠다며 발 뻗고 나섰지만, 내가 극구 사양했다. 아침에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교문을 다 빠져 나왔을 때, 그 앞에 서있던 익숙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몇일 전, 건강 검진을 해주셨던 의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나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할아버지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서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물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세요?” 그런데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물었다. “결과.... 나왔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서는 말을 이었다. “저, 저번에 하나 빠트리고 하지 않았던 검진이 있어서.. 오늘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니?” 다리가 조금 문제인 걸 뺀다면, 나는 지금 꽤 괜찮은 컨디션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난 추가 검진을 받게 되었고, 꽤 빠른 시간 내에 검진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면 언제 정도에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다음 주 정도에 내가 학교로 찾아가마. 집으로 연락하면 분명 너희 엄마가 받을 테니까...” “네.” 할아버지의 표정이 계속 신경 쓰인다. 검진 내내 좋지 않았던 표정이 말이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뒤, 인사를 하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집에 오는 길은 참 힘들기 짝이 없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잠시 멈춰 서서 다리를 주물렀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빠르게 걸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쇼파에 앉았다. 엄마는 외출을 했는지, 집에 없다. 혼자 집에 있던 적이 얼마 없어서 그럴까? 왠지 집이 텅 비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온 것 같다. “한경이 왔니?” “응.” 나는 쭉 폈던 다리를 바닥에 내리고선 엄마가 들어오는 쪽을 쳐다봤다. 엄마는 한 가득 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시장 갔다 왔어?” “응. 장 좀 보고 오느라고, 학교는 다 끝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주방으로 가, 사온 것들은 정리했다. 나는 아까처럼 다시 쇼파에 다리를 올려놨다. 정리를 다 하고 온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다리는 괜찮아? 병원이라도 가 볼래?” 병원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아주 세게 흔들어 보였다. 분명 병원을 간다면 할아버지의 병원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 내가 건강 검진을 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될 것이다. “정말, 괜찮겠어?” “응. 내가 한 두 번 넘어진 것도 아닌데, 뭐.”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웃어보였다. 엄마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희미하게 웃었다. “아, 엄마. 자전거 좀 닦아줘.” “자전거는 왜?” “내일부터 타 볼려고.” “그 다리로는 자전거 못 타잖아. 다 낳으면, 그 때 타자.” “나 괜찮아. 살짝 삐긋한 것 뿐이지, 자전거도 못 탈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부탁이야. 엄마.” 나는 두 손을 모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인 것 같다. 엄마는 결국 내가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얼른 다리를 낳게 하려면 더 움직이고, 더 밝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대신, 다리가 아프거나 힘들 때는 자전거 타면 안돼. 알았지?” “응. 알았어.” 다음날. 엄마는 내가 등교하는 아침부터 자전거를 닦고 있었다. 내일부터 엄마가 닦아 준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할 것이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다녀올게!”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점점 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분명 더 느린 걸음이었는데, “어, 준아!” 학교 교문 앞에서 준이와 마주쳤다. 나는 준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안녕.” 내가 웃으며 인사하자, 준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내 표정도 금세 굳어졌다. “...다리는 괜찮아?” 의외의 물음이었다. “어?” “걷는거 보니까, 멀쩡하네.” 준이는 그 말을 하고선,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걱정 같은거 해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준이도 하늘이도 조금은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그 아이들과 어느덧 친구가 됐다는 생각에. “지유야!”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있던 지유를 발견 했다. 나를 보더니, 손인사를 해 보이는 지유다. 교실 문 앞에 다 와서, 지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요즘은 지각 잘 안한다고.” “그래?” “근데, 다리는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네? 다행이다.” “응. 많이 좋아져서 내일부터는 자전거 타고 다닐려고.” “자전거? 아직은 무리이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무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미루다 보면 진짜 다리가 굳어져 버릴지도 몰라.” 내 말에 지유는 내 머리를 살짝 때렸다. “그런 말 하지마. 그러다가 진짜가 되어버리면 어쩌려고.” “알았어. 앞으로는 그런 말 안 할게.” “그래, 다신 하면 안돼. 알았지?” 지유의 말이 맞다. 그런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긍정적인 생각만, 좋은 마음만 가지고 살아도. 이 세상은 위험하고 어려우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어도, 아프게 될 테니까. 별의노래 제 14화 수업을 받는 내내, 난 머릿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잘 움직여지는 내 모습을..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깨끗하게 닦아 놓은 자전거가 보일 것이다. 그러면 난 이제부터 다시, 목표를 세우고 자전거를 탈 것이다. 다시는 넘어지지 않겠다는 목표. 학교가 끝나자마자 난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연습이 있는 날이었지만, 선생님은 내 다리 때문에 연습을 연기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깨끗하게 닦아 놓아서 그런지, 새 자전거 같다. 나는 자전거를 어루 만지며 웃어보였다. “어? 한경아.” “엄마.” 양동이를 들고 있는 엄마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 왔다. “오늘 연습 있다면서.” “선생님이 연기 하셨어.” “그럼 집으로 들어오지, 왜 여기 있어.” “자전거 좀 보고 가는라고.” 엄마는 들고 있던 양동이를 내려 놓더니, 나를 안았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행동에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나도 이내 엄마를 안았다. “우리 딸이 너무 예쁘다.” “어디가?” “아픈 척, 힘든 척 안하고 씩씩하게 이겨 내주니까.” “내가 그래?” “응. 그래서 엄마가 너무 닮고 싶어하지.” 엄마가 나를 닮고 싶어 한다는 말이, 왠지 모르게 슬프게 들려 왔다. “나는, 절대로 안 아플테니까 걱정 하지마.” “....응.” 엄마에게 몇 번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프지 않겠다고, 절대로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엄마를 내버려두고, 혼자 가지 않을 것이다. 저 자전거가 녹슬어서 제 수명을 다하고, 골동품이 되어 창고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의 곁에서 오래 오래 살 것이다. 다음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비록 목표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는게 너무나 기쁘다. 자전거 폐달을 다시 밟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엄마는 조심하라면서 대문 앞 까지 나와 나를 배웅 해주었다. 자전거를 얼마만에 타는걸까? 노래를 했을 때의 느낌처럼, 너무나 좋다. 꼭 구름 위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던 중. 나는 갑작스럽게 폐달을 멈추게 되었다. 바로, 내리막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해도 내리막 길이라서 위험하다. 결국,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위험하게 내리막 길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내리막 길을 내려 오는데, 순간 다리가 엉켜 버렸다. 그리고 중심을 잃게 되었고,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구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자전거와 뒤섞여 떨어지지 않아, 심한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단처럼 울퉁불퉁한 곳도 아니라서, 덜 다칠 수 있었다. 쓰러져 있던 난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나와 정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아....” 자전거가 부서지고 말았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고, 바퀴를 지탱해주는 막대기도 사라지고 없다. 나는 울상이 되어서 자전거를 쳐다봤다. “어쩌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세운 목표도 이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울 수 만은 없다. 난 지금 학교에 가는 길이니까. 부서진 자전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조금 저려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참을 만 하다. 학교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교실로 향했다. 내 모습을 보더니, 한새는 놀란 표정이다. “너, 꼴이...” “오다가 넘어졌지 뭐야.” “또?” “그러게, 조심 좀 할 걸 그랬나 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양호실 좀 갔다 올게.” 급히 교실을 빠져 나왔다. 그 이유는... 눈물이 흘러 내려왔기 때문이다.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난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에서 약을 바르고 선, 다리를 어루 만졌다. 요즘 들어 너무 많이 넘어지고 있다. 특히 다리가 자주 엉키는 바람에, 구른 적이 많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의심하지 않는다. 아직, 검진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니까. 구급상자를 정리 한 뒤, 난 양호실을 빠져 나왔다. 양호실을 나와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미애를 보았다. “미애야.”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날 쳐다보는 미애였다. 미애는 눈매가 선한 편이 아니라서, 옆에서 보았을 때는 꼭 날 싫어하는 듯한 눈빛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애가 좋은 아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리는 좋아졌어?” “응.” “근데, 그건 또 왜 그래?” 내 다리를 쳐다보며 묻는 미애에게 나는 실없이 웃어 보였다. “오늘 아침에 다친거야.” “조심 좀 하고 다녀.” 말투는 그리 친절한 말투가 아니지만, 그래도 미애가 날 걱정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 “응.” 나는 웃으며 미애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웃지마. 괜히 너한테 정 들기 싫어.” 하지만 미애의 말을 들었음에도 난 계속해서 웃었다. 너무 고마웠기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너무나 기쁘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겉으로는 내색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친구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아이들이라서. 그런 아이들이 바로 내 친구라서. 난 너무 기쁘다. 지금 난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학교의 분위기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착한 아이들과 함께 있는 학교라면, 그 곳이 어떤 학교이더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별의노래 제 15화 방과 후가 되자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난 멍하니 자리에 남아 있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덧 봄 바람의 기운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앉아 있던 난 걸려 있던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신발을 들고 복도를 걸었다. 그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왔다. 피아노... 소리였다. 교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음악실로 향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 뒷 문을 살짝 열어 누가 있는지 확인 했다. 그건 하늘이었다. 나는 문에 기대어 하늘이의 연주를 들었다. 쇼팽의 이별곡이었다. “왜 숨어 있는거지?” 하늘이는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커진 눈을 한 채로 문 뒤에 숨었다. 하지만 내가 숨을 이유가 없었다. “미안... 일부러 숨어 있었던 건 아닌데...” 하늘이가 쳐다보자 난 고개를 숙였다. 피아노에 덮개를 씌운 하늘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음악실 문을 열었다. “저기.” 나는 하늘이를 불러 세웠다. “나 때문이라면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지나가던 길에... 피아노 소리가 들려서 온 건데, 불편했다면 미안해.” 내가 말을 끝내자 하늘이는 내 쪽을 쳐다 봤다. “아직 너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 그래서 니가 뭘 싫어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니가 그런 걸 알 필요 없잖아.” 하늘이의 말에 난 고개를 들었다. “친구잖아.” “뭐?” “우린 친구니까...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이가 그렇게 또 가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가지 않았다. 책상에 걸터 앉아 머리를 헝클이는 하늘이. 나는 하늘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 봤다. “하, 하늘아.” “너란 애는...” 한숨을 내쉬는 하늘이였다. 나는 하늘이의 눈치를 보다가 하늘이 옆에 앉았다. “니가 갈 줄 알았는데, 안 가줘서 고마워.” 고개를 숙인 나는 시선을 발 끝에 두었다. 고맙다는 말을 왜 했을까? 혼자 남는게 두려워서 그랬던 걸까? 그렇게 한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 하늘이가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였어. 그 애가 죽은게...” “뭐?” “멀쩡하던 녀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 혼자서 아팠다고 하더라. 나도 정준도 아무것도 몰랐어. 그래서 그런 나를 미워했고, 정준을 미워했어. 그 녀석이 그렇게 죽어 갈 동안 우린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으니까.” “어디가... 아팠는데?” “아직도 모르고 있어. 물어 보고 싶지 않았어. 이제와 알아서 뭐할까 싶기도 했으니까.” 고개를 숙이는 하늘이었다. 매일 강해 보이고, 무뚝뚝하던 녀석이. “그 아이가, 좋아할까?” “뭐?” “너랑 준이가 이렇게 싸우고,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척 살아가는 걸 하늘에서 보고 좋아할까?” “그건...” “그 아이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때문에 너희도 힘들어질까봐 그랬을거야. 병에 걸린 사람은 그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거든. 그래서 말하지 못했을거야. 그건 너희 잘못이 아니야.” “자기 혼자 아프고 죽게 된다면 죽고 난 다음,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더 힘들거라는 생각은...” “잠깐이니까.” 나는 하늘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 봤다. “잠깐 떨어져 있고, 잠깐 아플테니까.” “그 잠깐이... 너무 길어.” “차라리 그 아이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 준이도, 나도,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너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어. 마음을 열어. 꽁꽁 닫힌 문을 열어.” “강한경...” “대신 우리들은 그러지 않을게. 그 아이처럼 비밀로 하지 않을게.” 그렇게 약속 했다. 절대로 그 아이처럼 혼자 아프고, 혼자 떠나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했었던 약속 처럼. 하늘이에게도 약속 했다. 그 날 저녁. 엄마와 함께 잠을 자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 얼굴을 기대었다. “엄마, 나 친구 생겼어.” “친구?”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남자 애인데,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뭘 힘들어 하고 있는데?” 엄마는 돌아서서 나를 쳐다 봤다. “죽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자기가 그 친구가 아픈지 몰랐었다면서 자기를 원망하고..” “어디가 아팠는데?” “모르겠대. 이제와서 알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면서..” 엄마는 나를 안아 주었다. 나 또한 엄마의 등을 손으로 감쌌다. “한경이 니가 그 아이의 빈 자리를 채워줘. 소중한 친구가 되서 이제는 그런 원망 같은 거 안하게 도와줘.” “응. 그럴려고.” 엄마는 나를 보더니 살짝 웃어 보였다.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이렇게 남 위할 줄도 알고.”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 그렇게 상처 받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상처를 주지 않으면 돼.” “상처를 주지 않으면?” “똑같은 상처, 그리고 또 다른 상처, 어떤 상처이든지 그 사람은 이미 상처로 아파하고 있으니까.. 상처보다는 사랑을 줘야지.” “사랑.... 을?”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어떤 범위인지 잘 모르겠다. 이성간의 사랑은 아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진정으로 친구라고 생각 한다면 그 사랑을 줄 수 있을거야.” “친구라 생각하면 줄 수 있다...” “응. 꼭 아픔을 다 없앨 수 있을거야.”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 상처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상처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면, 상처가 점점 작아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하늘이에게, 그리고 준이에게 사랑을 준다면. 그 아이들의 상처, 아픔, 그리고 원망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믿을 것이다. 별의노래 제 16화 다리가 조금은 편해졌다. 그 덕분에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학교 다녀올게!” “조심해서 갔다 와.” “응!” 나는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이 다른 날보다 짧아 보였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난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 했다. 반 아이들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사 정도는 나누는 정도라서 다행이다. 사실은 이 학교에 와서 왕따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난 잘 놀지도 못하고, 또 월등하게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아이라서.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잘 놀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비록 소문은 좋지 않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학생답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학생으로서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 줄 아는 아이들이니까. 그런 아이들이 너무 부럽다. 난 그런 기억을 만들 줄 모르기 때문에. “강한경!!” “어?” 내 이름이 들리자 반 자동적으로 뒤를 쳐다 봤다. 지유가 서 있었다. “지유야.” “뭐야. 왜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넋 나간 사람처럼.” “근데.. 우리 반에는 무슨 일이야?” “그냥 심심해서 놀러 왔어. 주미는 미애랑 같이 매점 같거든.” “그렇구나.” 사실 미애랑 우리는 친해지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참 좋은 아이이고, 마음이 무척 여린 아이이다. 나랑은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주미와 특히 친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나도 주미와 같이 미애와 친해질 수 있을거라 믿는다. “요새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누구? 나?” 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요즘 기분 좋은데?” 나와는 반대로 지유는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말을 잇는 지유였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서 걱정 돼.” “나 씩씩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지유의 두 손을 잡았다. 걱정 같은 거 내색 안하는 지유였는데, 낯설기도 하고,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안녕!” 한새의 등장이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인다. “안녕.” 지유가 손을 살짝 들어서 인사를 하자,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웃어보이는 한새다. “뭐야,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무슨 일이 있는게 틀림 없다. 나는 지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한새의 손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내 물음에 한새는 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오늘 1교시가 체육이잖아.” “그래?” “체육하면 또 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새가 체육을 좋아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난 체육에는 관심도, 소질도 영 없는 편이라서 말이다. “표정이 왜 그래? 내 자화자찬이 싫다는거야?” “아, 아니야.”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다. 그냥 나 때문에 그런 것이다. 체육을 못하지만, 그렇다고 못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못 하는 걸 밝히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 듯 나도 내 단점을 들어 내고 싶지 않다. “표정 좀 펴. 무서워.” “어?” “스마일!” 한새는 손가락으로 내 입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올라간 내 입꼬리가 웃겼는지, 지유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왜 웃어.” “진짜 웃겨. 거울로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웃겨?”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지유와 한새다. “그만큼만 웃어.” 지유가 말했다. 난 손을 내리고서 대답했다. “뭐?” “지금만큼 웃으면, 우리도 지금만큼 웃어줄게.” “지유야.” “아, 가봐야겠다. 조금 있으면 조회잖아.” 지유가 1반으로 돌아가고, 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지유의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강한경.” “어?” “자리에 앉아. 멍하니 서 있으면 바보 같아 보여.” 한새는 내 의자를 빼주더니 앉으라며 말했다. “고마워. 한새야.” “조회 끝나고 서둘러서 체육복으로 갈아 입어야 할 거야.” “응.” “아, 그리고 1반하고 합동 체육이라고 하더라.” “그래?” 자리에 앉아서 한새와 얘기를 했지만, 마음은 아직 서 있던 그 곳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웃어라 좀.” “어?” “아까 한지유가 말했잖아. 지금만큼만 웃으라고. 그러니까 웃어.” 한새의 말, 지유의 말. 참 고맙다. 비록 웃는게 예쁘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더 잘 웃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유와 한새를 웃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웃게 하기 위해서. “응! 나 지금만큼 웃을게.” 아니, 난 지금보다도 더 웃을 것이다. 별의노래 제 17화 체육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다. 벌써 봄이 다 지나가서 그런지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꽤 선선해서 달리기하기에 좋은 날씨인 것 같다. 체육 선생님도 그걸 알았을까? 오늘 체육 시간에 하게 된 종목. 달리기. 달리기를 못하는 나로선 꾀병을 부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런 건 수업을 무단으로 빠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결국 못하는 달리기이지만, 수업을 듣기로 했다. 남자 아이들부터 시작한 달리기.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동안 많은 생각이 겹쳤다. 그런데 딱히 그 생각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뒤죽박죽 엉켜버려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 아이들의 순서가 끝이 나고 여자 아이들의 차례가 되었다. 내가 여자들 중 제일 먼저 달리게 되었다. “달리기 못하는데 어떡해.” 하늘이와 한새에게 말했다. 하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한새는 그저 웃었다.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선생님이 쏜 총소리가 들리고 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넘어졌던 몇 일 전 일들이 생각났다. 바보 같은 난 그 생각으로 인해 다리가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점점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 생각 속에 그 날들처럼, 다시 그렇게. 체육복과 얼굴은 모두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피를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모두 내가 있은 곳으로 달려왔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저지하고선 나에게로 다가왔다. “괜찮니?” 피를 본 나는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 했다. 턱에 상처가 나버렸다. “걸을 수 있겠어?”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만 저었다. 나를 부축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선 나와 함께 양호실로 향했다. 다리가 저리고, 턱에서는 피가 나온다. 두렵다. 무섭다. 요즘 들어서 가장 크게 다치게 되었다. 체육 선생님의 도움으로 턱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침대에 누웠다. “쉬고 있으렴. 잠깐 교무실에 갔다 올 테니까.” 체육 선생님이 나가고 난 후. 홀로 남은 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턱에 난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지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에 들었을까? 무언가 따뜻한 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 따뜻함을 느낀 난 눈을 떴다. “한경아.” 그 따뜻함은 바로 엄마였다.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곧장 학교로 왔다는 엄마. 괜스레 미안해진다. “엄마, 왜 왔어. 나 멀쩡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왜 울어. 나 멀쩡하다니까. 그냥 나 달리기 못 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턱이 이게 뭐야.” 엄마는 내 턱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괜찮아. 이런 거 금방 나아.” 엄마가 우니까 나까지 눈물이 그렁거렸다. 참자, 참아. 하면서 간신히 참아냈다. 나는 엄마를 껴안았다. 그리고 다독여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요즘은 내가 멍하니 다녀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그런 거다. 학교에 대한 생각, 음악단에 대한 생각, 아이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검진 결과에 대한 생각. 이것저것 너무 복잡한 게 많다 보니까 그런 거다. 한숨을 내쉬던 난 문뜩 이런 생각을 했다. 종이비행기를 접는 것처럼 쉽게 접을 수 있는 게 생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복잡한 건 그냥 접어서 날려 버리게.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엄마를 괜찮다면서 보냈다. 사실, 엄마한테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기대어야 하는 게 나니까. 내가 기댈 수는 없는 거다. 어리광 부릴 수 있는 내가 아니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한번도 엄마에게 어리광 부린 적이 없다. 기댈 수 없을 만큼 세상에게 상처를 받은 엄마였으니까. 사랑을 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엄마에게, 나는 기댈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항상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별을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다시 아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난 눈물을 닦아내고선 두 손을 높게 들었다. “화이팅!!” 마음이 무거워도 일어서자. 그래서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자. 그렇게 다짐했다. 힘들어하면서 주저앉는다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더 많으니까. 그래, 나는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이니까. 별의노래 제 18화 방과 후가 되어서야 양호실에서 나왔다. 교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눈초리가 무서웠다.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날 쳐다보는 눈빛들을 지금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양호실의 문이 열렸다. “하늘아.” 믿기 힘들었다. 하늘이가 양호실에 온 것을. “몸은...괜찮냐?” “어? 어. 괜찮아. 살짝 다치기만 한건데..” 하늘이의 반응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 너무 기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라고 말한 하늘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말했다. “아, 아니다.” 난 하늘이의 행동에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선 하늘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에 가는 길이면, 나 좀 도와줄래?” 혼자 가기 너무 싫었다. 만약 쓰러진다면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늘이에게 부탁했다. 하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와서 나를 잡아주었다. 하늘이의 도움으로 집에 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가버린 하늘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으려고 하는데, 엄마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한경아. 왜 전화 안 했어. 엄마가 가려고...” “친구가 도와줬어.” 신발을 다 벗고선 거실로 걸어갔다. 쇼파에 앉은 난 다리를 올려놓고 반쯤 누운 자세를 했다. 엄마는 내 옆에 앉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의 말에 나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혹시라도 니 몸에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날 바라보는 엄마. 더 이상은 숨기기 싫다. “엄마. 나 검진 해 봤어.” “뭐?” “엄마 몰래 한 번 했었어. 아직 검사 결과가 안 나왔지만, 좋게 나 올 거야.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 “정말... 그런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길거라고 생각했던 내 거짓말은 이렇게 끝이 났다. 속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시는 거짓말 같은 거 하면 안 되겠다. “혹시나.. 좋지 않은 나와도 엄마한테 꼭 말해 주기다. 알았지?” 좋지 않은 결과. 그렇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에, 난 서슴없이 알았다고 말했다. 엄마와 손가락까지 걸며 맹세했다. 다시는 거짓말 하지 않을게요. 엄마. 엄마의 도움으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문이 닫히고 난 멍하니 천장을 쳐다봤다. 그러던 난 침대 옆 작은 서랍장에서 액자를 꺼내 들었다. “아빠, 나 잘한 거겠지?” 아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분명 아빠가 내 물음을 들었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잘한 거야. 아주 잘한 거야. 라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아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들을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만 상상해야 한다. 아빠의 목소리, 그리고 아빠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졌다. 다음날.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지유와 주미가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왔다. 교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고마워.” “고맙긴 뭐가 고마워. 어제도 계속 자고 있길래 인사도 못하고 왔는데.” “그래. 그리고 턱이 그게 뭐야. 얼굴에 흉 지겠다.” 지유와 주미가 변한 것 같다. 아직도 중학생 같았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진짜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것 같다. 괜스레 멀어져 보인다. 난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매일 바보 같이 넘어지기나 하고, 철부지이다. 학교에 들어서서 교실까지 나를 도와 준 지유와 주미. 교실에서는 한새가 날 도와주었다. 아직 하늘이는 오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오랜만에 보는 준이었다. “안녕. 준아.” “또 다쳤다고 하던데.” “괜찮아. 그냥, 예전보다 조금.” “매일 괜찮다고만 하더니, 이 꼴이지.” “그건 맞는 말이야.” 준이의 말에 한새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 할게.”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 때, 준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너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지 마.”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참 많이 있다. 엄마,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빠. 모두가 날 지켜보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긴장을 주다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도록. 누구에게도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긴장시켜야겠다. 준이가 1반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하늘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하늘아.” 하늘이는 준이를 쳐다보더니 시선을 피했다. “니가 여긴 왠일이냐?” 말투에서 싸늘함이 느껴진다. “상관 마.” 준이 역시 그랬다. 두 사람이 언제 쯤 다시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들 중 한가지 이다. 비록 내가 알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별의노래 제 19화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이 나자,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집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매고선 복도를 걸었다. 1층을 지나가던 길에 음악실을 보게 되었다. 살짝 열려 있는 문을 열고 음악실을 쳐다봤다. 꽤 오랜만에 들른 것 같다. 나 때문에, 계속해서 연습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잠시 동안 음악실에 있던 난, 살짝 웃어 보이고선 돌아서서 학교를 나왔다. 아직도 아픈 다리 때문에 느린 걸음이다. 짜증이 난다. 매일 이렇게 다리를 쩔뚝거리고 다닌다는 것이. 그렇게 걷고 있는 날 누군가가 불렀다. “한경아.”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서류봉투가 쥐어져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 듯 하다. “할아버지, 검사 결과 나왔어요?”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른 말로 대답하셨다. “턱은... 어쩌다가 다친 거니?” 나는 손으로 턱을 만지며 대답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 하다가 그만 넘어졌지 뭐예요.” “왜... 넘어졌는데?” “그냥, 저 원래 잘 넘어지잖아요. 무릎이 몇 일 전처럼 그렇더라고요.” 내 대답에 할아버지는 한숨을 깊게 내쉬셨다. 그리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서류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내 X-ray 사진이었다. “제 사진이에요?” “한경아.” “네?” 할아버지는 착잡한 표정을 한 채 말을 이으셨다. “무릎이 굳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 건, 앞으로 니가 겪어야 할 일들 중 가장 덜 아픈 일이 될 거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무릎부터 점점 올라오게 되고 언제부턴가는 팔이 못 쓰게 될 정도로 굳어 버리게 될 거야. 또 더 올라오게 되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거야.”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언제 죽게 될 지도 몰라서 항상 위험 속에서 살아야 한단다.” “하, 할아버지. 장난 하시는 거죠? 저 지금 놀리시는 거죠?” “근 디스트로피 증. 니가 걸린 병명이란다.” 말도 안돼.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왜... 그게 도대체 뭔데? “그게 뭔데요? 그 병이 뭔데요. 왜 내가 그 병에 걸려요.”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근 디스트로피 증의 경우 발생원인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경이 네 경우엔 원인불명으로 왜 걸리는지 발생 원인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근 디스트로피 증은 유전으로...”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결국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유, 유전이라니요? 엄마도 멀쩡한데...” 문뜩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호, 혹시... 아빠에요? 우리 아빠가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한경아.” “교통사고잖아요. 우리 아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거잖아요.” 눈을 감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내려왔다. “엄마가 그랬어요. 엄마가...”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 구셨다. 다 말이 안 된다. 아빠가 그 병에 걸려 돌아가신 것도, 내가 지금 이 병에 걸렸다는 것도. 다 정말 말이 안돼. “할아버지. 그게 진짜라는 거에요?”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나는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자,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이 점점 굳어간다.”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이 손도, 그리고 지금 내 목소리도 모두...” 더 이상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언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멈추지 않고 계속 눈물이 나온다. 주룩주룩. 소나기 같다.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손으로 잡았다.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다리를 절며 할아버지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겼다. “한경아.” “할아버지, 저 죽는 거죠?” 할아버지를 보고 대답을 듣기 싫었다. 그래서 돌아선 것이다. “나 죽으면 안 되는데. 모두하고 약속 했는데.” 모두한테 굳게 약속 했는데. 난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거짓말쟁이. “못 사는 거죠? 할아버지가 나 못 살려주죠?” 할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못 사는구나. 못 살려주는구나. 난 입술을 꽉 깨물고 걷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내 걸음. 이게 병의 시작이었다니, 바보 같이. 괜찮아. 멀쩡 할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 거짓말이 되었다. 내가 죽는다니... 말도 안 된다. 난 아직 너무나 할 게 많은데, 고등학교도 졸업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짧아. 난 아직, 피지 못 했는데. 이제 열일곱인데, 꽃 피울 수가 없잖아. 왜 하필, 나인 걸까? 수많은 사람들 중 왜 나일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건가요, 하느님. 내가 없으면 상처 받을 사람이 많아지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제발 부탁드려요. 이 모든 게 꿈이길. 내가 죽지 않는다고, 대답해주세요. 별의노래 제 20화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배신감이 들었다. 나를 지금까지 속여 온 엄마에게.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를 미워하는 만큼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너무나 많이 해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절대로 아프지 않겠다고, 모두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던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탁자에 놓여져 있던 엄마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왜, 거짓말 했어.”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엄마가 밉다. “어차피 알게 될 거였는데,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 ‘혹시, 다리에 자주 쥐가 생기지는 않지?’ 엄마의 물음. 모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물음. ‘정말로 만약에.. 다리에 쥐가 많이 생기면 엄마한테 말해야 돼. 알았지?’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약속했으니까. ‘엄마.. 나는 그렇게 안 갈게. 아빠처럼 그런 나쁜 사람 안 될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 아빠만큼 나쁜 사람이 되었다. ‘아빠처럼 그렇게 날 데려가지 않을 거야. 그럴 거야. 분명히.’ 그렇게 굳게 믿었었는데, 오늘만큼 하늘이 미워 보인 적은 없다. 고개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모든 게 낯설어졌다. 병들기 전에 내가 살던 이 곳. 하지만 이제는 병들어 버린 나. 옷장 속에 걸려 있던 옷을 차근차근 꺼냈다. 그리고 큰 가방 속에 담기 시작했다. 서랍 속에 들어 있던 물건들도 담았다. 마지막으로 내 눈에 들어온 건, 아빠의 사진이었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 “왜 아팠던 거에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전해지지 않았다. 가방을 잠그고, 책상에 앉았다. 오래 전 사두었던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에게. 모든 걸 알게 된 지금 엄마가 정말 미워. 내가 왜 이 병에 걸려야 하는지 생각하니까 짜증이 났어. 근데, 난 아빠의 딸이니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아. 나까지 잃기 싫었던 엄마의 마음을 아니까. 그래서 나 때문에 힘들어 질 엄마를 보기가 싫어. 나를 찾지 말아 줘.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저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지내게 해줘. 나만 아프면 되니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파지는 거 보기 싫어. 잘 있어요. 사랑하는 엄마에게. 눈보라 같은 벚꽃 잎이 지는 계절에, 딸 한경.’ 눈보라 같은 벚꽃 잎이 지는 계절. 갑자기 문뜩 떠오르는 생각에 눈물이 많아졌다.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될까? 혹시나 내가 너무 일찍 떠나버리게 된다면, 첫 눈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엄마, 아이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채.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지? 바보 같은 생각은 접자.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편지를 곱게 접고, 가방과 함께 들고 나왔다. 거실에 있는 탁자에 살며시 올려놓은 편지. 마지막인데, 엄마는 오지 않았다. “잘 있어. 엄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가방과 함께 집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돌아서는 순간.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혹시나 나를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옆 골목으로 숨었다. 엄마는 한가득 손에 무언가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선 벽에 붙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못 보고 갈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들어가고 난 뒤에야 난 골목에서 나왔다. 이제는 진짜로 마지막이구나.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서는 돌아서서 가방 끈을 꽉 잡았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영영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게 너무 두렵다. 엄마의 옆에는 항상 내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이제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고, 선생님에게는 아빠에 대한 환상을 들어야 하는데. 그 많은 시간들을 잃어버려야 한다는 게, 너무 싫다. 어떡하면 좋을까? 땅에 그대로 다리가 굳어져 붙어버린 것 같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고선 말했다. “내가 떠나야 모두가 행복해 질 거야.” 그런 마음을 먹어서 그런 것일까?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억지스러운 다짐 때문인지,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아파왔다. 하지만 그 말처럼 모두가 행복해 지려면, 내가 가야 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짐이 되기 싫어 떠나는 날 이해해줘. 모두를 위해서, 슬프지만 떠나는 거야. 그러니까 날 용서해줘. 다만, 내 선택이 모두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Daum 카페인쇄하기 인쇄 [[　　로맨스]][가인] 별의노래 제 21화 ~ 제 30화 | 　　닷컴퍼옴완결 [퍼옴·화수A] | 조회 3657 | 2008/01/08 18:39:03 ＿＿＿＿＿＿＿＿＿＿＿＿＿＿＿＿＿＿＿＿＿ 닉네임 : 가 인 메일 : orwwor@hanmail.net 출처 : 우리들의요염한반란,여우팸 http://cafe.daum.net/cateyeghdus 팬카페 : http://cafe.daum.net/Lovegain 팸카페 : http://cafe.daum.net/cateyeghdus ￣￣￣￣￣￣￣￣￣￣￣￣￣￣￣￣￣￣￣￣￣ 별의노래 제 21화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들어 간 엄마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한경아.” 하지만 이미 떠나버린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모두 내려놓은 채, 내 방문을 연 엄마.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한 건 할아버지였다. 병원으로 오라는 말만 전한 채 할아버지는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엄마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나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려 주셨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세요. 우리 한경이가...” “...근 디스트로피 증에 걸렸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사람하고 같은 병에 걸릴...”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으니까. “이 아이까지... 그렇게 맥없이 보내야 하는 거에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니.” “하, 한경이는 알아요?” 할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엄마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이하고 같은 병이라는 것도...” “다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는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내 방문을 열었다. 텅 빈 내 방.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한경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내 방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엄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탁자에 놓여진 전화기를 든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려 던 엄마의 눈에는 내가 남겨놓은 편지가 들어왔다. 전화기를 살며시 내려놓은 엄마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편지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편지의 모든 내용을 다 읽고 난 뒤, 엄마는 편지와 함께 집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 아직 퇴근을 마치지 못한 선생님 때문에 엄마는 다행히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숨도 고를 세 없이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경이가 없어졌어.” 당황스러웠는지 선생님은 엄마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경이가 없어지다니.” “내가 바보였어. 다 말해주었어야 하는 거였는데.” “무슨 소리야.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봐.” 엄마를 우선 안으로 들여보낸 선생님은, 쇼파에 엄마를 앉히고 따뜻한 차를 내왔다. “처음부터 말해 봐. 한경이가 왜 갑자기 없어져.” “사실, 그 사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석규가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니.” “모두를 속였어.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어. 괜히 한경이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 “그럼 그 것 때문에 한경이가..”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경이도 그 사람하고 같은... 병에 걸렸어.” “무슨 병?” “뼈가 점점 굳어가는 병.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병에...” 선생님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이 편지만 남긴 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어.” 엄마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한경이도 석규, 그 녀석처럼 떠나게...”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는 선생님이었다. “어서 찾아야 해. 안 그러면 한경이가...” “그래. 내가 아이들하고 같이 찾아볼게.” “부탁해. 내 힘으로는...” 엄마는 고개를 떨 구고 눈물을 훔쳤다. 선생님은 우선 엄마에게 오늘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찾아보자고 말했고, 애써 괜찮은 척 해보이며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굳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또한 어디에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말이다. 머리가 복잡한 선생님은 퇴근시간이 3시간이나 지나서야 학교에서 나왔다. 다음날. 선생님은 황급히 아이들을 음악실로 불렀다. 그리고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애들아.” 낮은 선생님의 목소리에 모두가 주목했다. “우리가 한경이를 찾아야 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미는 놀란 듯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옆에 있던 한새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학교에도 등교하지 않았던데.” “정말? 그럴 리가...” 한새의 말에 지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경이가 우리 곁을 도망갔어.” 선생님의 말에 하늘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재 한경이는 진행 중인 병을 앓고 있다고 하더라. 어제 처음으로 그 병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모두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떠났어.” “그, 그럼 병은 고치면 되잖아요.” 찬희의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고칠 수 없는 병이란다.” 그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미애는 선생님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얼른 한경이를 찾아야 하잖아요.” “그래. 우리가 한경이를 찾아야 해.” “하지만 무슨 수로...”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이었다. “첫 공연을 했던 것처럼 위문공연을 하러 다니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한경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보육원이나 요양원 정도가 될 테니까.” “그럼 얼른 찾으러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로 흔들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대답이다. “그래야지. 앞으로 방과 후 시간에는 항상 공연을 하러 갈 생각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구나.” 모두들 찬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하늘이의 눈이 슬퍼지고 있었다. 나의 거짓말 때문에 상처받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아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상처를 상처로 받게 되었으니까. 별의노래 제 22화 낯선 버스를 타고서 도착한 곳은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외지라서 그런지 버스도 그리 많이 오는 곳도 아니고, 건물도 많지 않다. 어쩌다가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정착한 곳이 마음에 든다. 공기도 깨끗하고 거기에 내가 찾던 요양원도 있는 곳이니 말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서 불편한 걸음 거리로 요양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요양원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적당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존재했고, 그 사람들의 인상은 모두들 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나이가 조금 지긋하게 있는 아주머니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누구 만나러 오신 거에요?” “아, 아니요.” 나는 고개를 숙여 가방을 쳐다봤다. 그제야 그 아주머니는 가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을 만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날 따라와요.” 다행히도 친절한 아주머니다. 그 아주머니를 따라 도착한 원장실. 포근하고 은은한 벽지가 마음에 드는 곳이다. 원장님 또한 그 색과 무척 닮아 있는 분 같다. “어떻게 오셨죠?” “요양을 하려고 하는데, 이곳에서 할까하고요.” “아직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요양을 하려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잠깐 망설이던 난 잡고 있던 가방 끈을 더 세게 잡고 대답했다. “불치병에 걸려서,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것 같아서요. 내 힘으로 극복하고 난 다음에 보고 싶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어요.” 원장님은 내 눈을 보더니 살짝 웃어보였다. “참 맑은 눈을 가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이곳에 온 걸 환영해요. 하지만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가능해요.” 난 원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이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게 될 방에 도착한 난 가방을 힘겹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짐들을 하나씩 꺼내 사물함에 넣었다. 그 때, 어디선가 바퀴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있는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여자아이. 어디가 불편한걸까? “처음 보는데 어디에서 온 거에요?” “병원에서 곧바로 달려왔어.” “그렇구나. 근데, 언니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낳지 못하는 병에 걸렸거든.” “어, 나하고 똑같다.” 자신하고 같다면, 그럼 불치병? “혹시 근 디스트로피 증이라는 병을 알아요?” “뭐?” “내가 걸린 병이 그거래요. 벌써 병이 진행 중이어서 지금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어요.” 작지만 당돌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말은 나에게 상당한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나도 언젠가는 저 아이처럼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도 그 병인데.” 나는 사물함 문을 닫으며 말했다. “언니도 그 병이구나. 처음 만났다. 나랑 같은 병.” “넌 언제 알았어? 그 병에 걸렸다는 거.” “2년 전 쯤, 학교에서 하는 검진에서 나왔어요. 1년 동안은 집에서 생활 했는데 불편해서 여기로 온 거에요.” “그럼 니가 오고 싶어서 온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아이. “부모님이 반대하셨지만 그래도 여기가 더 편할 것 같아서요. 벌써 1년이나 되었고요.” 참 밝은 아이 같았다. 이제 병을 알게 된 난, 벌써부터 울적해 있는데. 저 아이는 알게 된지 2년이나 흘렀지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병도 많이 진행되어 걸음을 걸을 수 없다는 아이. 근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만약에 병이 낫지 못하더라도 저 아이처럼 웃을 수 있는 걸까? “언니, 힘내요.” “어?” “사람은 아프면 다 성숙해 진다고 하잖아요. 나는 그 말 믿어요. 언니도 그냥 성숙해지기 위해서 아프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아픈 것도 금방 잊을 수 있을 거에요.” 성숙해 지기 위해서 아프다. 꼭 날 위로하기 위한 아이의 말 같았다. 코끝이 매워졌지만, 나는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아이처럼 생각하자. 그럼 나도 웃을 수 있게 될 거야. 그 날 저녁. 처음으로 이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남들과 같은 곳에서 잔다는 게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다들 나를 원래 있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해준다. 그래서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 옆자리에서 잠을 자는 여자 아이.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유리라고 해요. 언니는요?” “난 한경이야.” 유리는 살짝 웃어 보이며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 “저기...” “왜요?” “다리가 불편하잖아. 그럼 잠을 잘 때는 어떻게 하고 자는 거야?” “아, 잠을 잘 때에는 그냥 똑같이 자요. 단지 자는 도중에 쥐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요.” “그렇구나.” “궁금한 게 있으면 더 물어봐도 좋아요.” 유리의 말에 난 살짝 웃어 보였다. 낯설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혹시나 이 곳이 싫다면서 나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아이와 함께 이 곳에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언니,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에요?” “어?” 유리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병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한번도 학교에 간 적이 없다고 한다. “재미있는 곳이에요?” “음, 어떡해보면 재미있고, 어떡해보면 따뜻한 곳이었어. 항상 신경 써주는 선생님, 그리고 같이 웃어주는 친구들. 너무나 좋은 곳이야. 고등학교는...” 그래, 아주 좋은 곳이야. 지금도 그리워 질 만큼. 별의노래 제 23화 벌써 요양원에 온지 3달이 지났다. 시간은 참 빨랐고, 벌써 여름이 다 가고 있다. 내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점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언니가 산책해 줄 거야?” “응. 언니 걸음 연습도 하고, 너도 바람 쐬고.” 난 지난 3달 동안 유리의 산책 친구가 되어 주었다. 사실 유리의 증상이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급격히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말도 많이 더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말이 진짜였다. 그럼 나도 언젠가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햇볕이 따사롭기 그지없었다. “벌써 3달이나 되었네.” “그러게. 시간 참 빠르다.” “언니 오고 나서 참 좋았던 거 알아?” “뭐가?” “꼭 친언니 같아. 나를 이해해주니까.” 유리의 말에 나는 웃어 보였다. 근데 왜 그렇게 그 말이 슬펐는지,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요즘 들어서 눈물이 많아졌다. 가끔씩 사물함에 넣어 두었던 엄마, 아빠의 사진을 꺼내 보았을 때도. 그리고 둔해진 걸음을 볼 때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곤 한다. 그래도 언제가 유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성숙해지기 위해 아프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었다. “언니, 있잖아.” “응?” “만약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도 언니는 꼭 이 병, 이겨내야 돼. 알았지?” “유리야.” “꼭이다. 약속한 거야.” 못 본 척, 넘어가고 싶었다. 유리의 볼로 흐르는 눈물을 말이다. 처음으로 본 유리의 눈물. 항상 웃기만 하던 아이의 눈물로 인하여, 항상 울기만 한 난 웃었다. “알았어. 꼭 약속 지킬게.” 바람이 멈췄다. 흔들리던 나뭇잎도 멈췄고, 빠르게 가던 구름도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지금만큼 시간이 느렸으면 좋겠다. 유리도, 그리고 나도. 이 시간이 느리게 가는 만큼, 더 오랜 시간동안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오늘도 이렇게 기도드린다. 아직은 멀쩡한 손, 발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가끔은 봉사지원자분들과 함께 봉사를 하기도 한다. 나보다 몸이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몸이 멀쩡할 때, 봉사해야겠다. 오늘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14살짜리의 저녁식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잘 흘리고, 거기에 먹기 싫은 건 아무데나 뱉는 아이. 하지만 짜증을 부리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이 아이도 그렇게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원하지 않았지만, 선척적인 장애이니까. 식사가 끝나고, 방까지 그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그 아이의 간병인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고맙다며 연신 말하셨지만, 난 괜찮다며 말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꼭 그럴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날이 올 걸 알기에.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 지금 이렇게 봉사를 하는 것이다. “오늘 봉사하고 왔다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다들 한경이 칭찬을 해. 몸도 안 좋은데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는 아이라면서.” “아직은 누굴 도울 수 있으니까요. 제가 나중에 아주머니께 끼칠 폐를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너무나 죄송한걸요.” 아주머니의 선한 눈매가 웃고 있다. “너희 어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참 좋은 분일 것 같구나.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을 키우셨으니까.” 나는 엄마 이야기에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 우리 엄마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일찍 아빠를 이 병으로 잃고 난 후, 혼자서 저를 키우셨어요.” “그런 엄마를 왜 혼자 둬. 3달 동안 집도 안 가봤잖아.” “힘들어질까 봐요. 아빠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저까지 이렇게 된 걸 알면 엄마가 더 힘들고 지칠까봐.” “그래도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한경이 니가 있다는 자체가 엄마한테 힘이 되지 않을까?” “네?” “비록 자기가 힘들더라도, 자기를 믿고 오는 자식이 있으니까. 힘들어도 힘든 척, 아픈 척 안 하는 게 부모 아닐까?” 아주머니의 말이 맞는 말이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엄마는 끝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았고. 또한 날 버리지 않았다. 그게 바로 부모였다. “집에 한번 가봐. 많이 보고 싶어 하실 거야.” “하지만, 이 병이 다 나을 때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거에요.” “한경아.”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아주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나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오자 누워 있던 유리가 날 쳐다봤다. “아직 안 잤어?” “응. 잠이 안 와서.” “잠이 안 와?” 나는 옷을 갈아입고서 유리의 옆에 누웠다. “언니, 나 노래 불러 안돼?” “노래?” “응. 언니 음악단에서 노래 불렀다면서. 노래 듣고 싶어.” 음악단 이야기에 내 표정이 굳어졌다. 언젠가 유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음악단에 대하여 말이다. 매일 싸우는 두 녀석, 천재 지휘소녀, 투덜거리지만 사이좋은 한 쌍, 신경 안 쓰는 척하지만 신경 쓰는 아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꼬마 같은 녀석이 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악단. “응. 알았어.”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예전 첫 공연이 시작 되었을 때처럼.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짧은 추억이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게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었으니까. 보고 싶어. 애들아. 별의노래 제 24화 새벽이 되어서 갑자기 눈이 떠졌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허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해야 할까? 누워 있던 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고 하는데. 그 때, 유리가 내 손을 잡았다. “유리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유리는 이불로 얼굴까지 덮고 있었다. 내 손목을 잡았지만, 손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말이다. “유, 유리야. 너 왜 그래?” 나는 유리를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온 몸이 경직 되어버린 유리는 울고 있었다. 목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날 붙잡고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다. 눈물을 참고선 그 입 모양을 읽기 시작한 난, 그 말이 살려달라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을 달려 나와, 아주머니를 찾았다. “아무도 없어요? 아주머니!” 너무 늦으면 안 된단 말이야. 그러면 유리가 이대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은 원장님이 복도로 뛰어 나오셨다. “한경아, 무슨 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시, 시간이 없어요.” 나는 원장님의 손을 잡고서 방으로 뛰어갔다. 방에 도착한 원장님은 유리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다. “한경아.” “원장님, 유리 좀 살려주세요.”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우선 내가 유리의 가족들에게 연락할게. 지금 당장 이 곳으로 와달라고. 그 때 까지, 니가 유리를 붙잡아줘. 아직은 가지 말아달라고.” “하, 하지만.” 원장님은 내 어깨를 다독이고선 서둘러 원장실로 뛰어갔다. 방에 남은 난, 유리 옆에 앉았다. 땀으로 이미 범벅이 된 유리.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도대체 뭐지?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게 전부인 난, 지금까지 유리에게만 받아왔던 걸 알게 되었다. 정작 더 주어야 했던 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미안해, 유리야.” 원장님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온 유리의 부모님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유리의 모습을 보더니, 유리의 어머니는 주저 앉아버리셨다. 연락을 하면서, 원장님은 의사 선생님에게도 따로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어느덧 간병인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유리 옆에 앉아 있던 난 일어나 원장님 옆으로 향했다. “원장님.” “그냥, 지금 그대로를 지켜보자.” 내 마음을 위로하려던 말이었을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이 된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유리의 옆에 가서 유리의 맥을 짚었다. 모두들 숨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너무 이르잖아요. 피지도 못한 유리의 꽃은 어떻게 하죠? 그러면 그 꽃을 보지 못한 우리가 너무 슬퍼지잖아요. 살려주세요. 제발, 유리 좀 살려주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이런 내 기도가, 그리고 모두의 마음속에서 간절히 이루어지고 있는 마음이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단어로 무너져 내렸다. “사망...” 이미 손을 놓아버린 의사 선생님. 그리고 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아, 안돼요.” 내가 유리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아주머니가 날 붙잡았다. “한경아. 이러면 안돼.”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유리 아직 살아있어요.” 나를 붙잡고 있던 아주머니는 나를 안았다. 아주머니 품에 안기는 순간,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살려주세요. 유리 좀 살려주세요.” “한경아.” “유리가 살려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아주머니의 팔을 붙잡고 울었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질끈 감더니, “사망, 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확실한 말이 떨어지자, 유리의 부모님은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진짜 떠난 거구나. 차갑게 굳어버린 유리의 얼굴을 보면서, 눈물이 그냥 흘러내렸다. 그렇게 눈물이 소리 없이 찾아온 것처럼, 새벽도 소리 없이 아침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고, 유리는 옮겨졌다.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고, 난 유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 잡고 싶어 질까봐, 차라리 눈을 감고 유리의 웃는 모습을 기억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정말 떠났다. 지난 3달 동안 내가 이 곳에서 웃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빨리 떠나버렸다. ‘만약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도 언니는 꼭 이 병, 이겨내야 돼. 알았지?’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 아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이 약속을 지켜 줄 수 있을까?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유리를 위해서. 유리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너무나 살고 싶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힘들게 눈을 감고서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까 두려워졌다. 살고 싶다. 살아서 유리의 약속도, 그리고 아이들과의 약속도, 엄마와의 약속도 모두 지켜주고 싶다. 일찍 시들어버린 유리의 꽃까지, 내가 다 피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은 필 수 있는 희망이 남아있으니까. 물을 주고, 햇빛을 받으며 자라는 진짜 꽃처럼, 사랑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살아남고 싶다. 내 인생의 꽃을 피고 싶다. 별의노래 제 25화 유리가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다. 항상 같이 웃어 주던 아이의 빈 자리는 너무나 컸다. “한경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니.” “알아요. 잘 알아요.” “너 마저 그렇게 떠나버리면 어쩌려고.” 아주머니의 위로 섞인 말이 나에겐 그저 따끔한 충고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친구의 빈 자리가 이렇게 컸던가? 그럼 그 아이들 옆에 비어져 있는 내 자리도 과연 그럴까? 바보 같이 아이들 생각을 하고 말았다. 강해지자고 다짐 해 놓고선. “아주머니.” 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선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다시는 울지 않을래요. 하늘에 있는 유리한테 창피한 일이니까.” “한경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주머니는 쓴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밖의 날씨는 매우 덥다. 여름이 다 가고 있는지 늦더위가 한창이다. “언니, 그거 들었어요?” “뭔데?” 오늘 도와주는 아이는 걷지 못하는 아이이다. 다리에 근육이 없는 관계로 걸음을 걷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항상 웃고 있다. “내일 우리 요양원에 공연이 온대요.” “공연? 무슨 공연인데?” 아이는 고개를 흔들거렸다. 한경은 문뜩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몇 달 전 일이지만, 그래도 함께 했었던 첫 위문공연이었다. 내가 다니던 위문공연을 이제는 보게 되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언니도 내일 볼 거죠?” “모르겠다. 할 일이 있어서.” “할 일이요?” “응. 걸음 연습해야 하거든.” 요새는 틈틈이 걸음 연습을 하고 있다. 유리가 떠난 뒤로는 더 열심히. 언제 굳어버릴지 모르는 다리는 항상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야지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늘릴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처음 오는 공연인데 구경 가요.” “하지만...” 걸음 연습을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에 올려졌다. “하루 정도는 쉬어도 돼. 한 번 쯤은.” “...원장님.” “유리 그렇게 가고 나서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많이 달려왔으니까, 한 번 쯤은 뒤 돌아 보고 얼마나 달려왔는지 확인 해봐도 돼.” 원장님의 말은 내 마음속 깊이 박혔다. 그래, 한 번 쯤은 뒤 돌아 보는 것도 괜찮아. 만약 수평선 위를 걷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수평선을 걸으면 되는 거니까. 비뚤어진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도 다시 고쳐먹으면 되고. “네. 그럴게요.” 다음날. 공연이 열리는 휴게실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소에는 보지도 못했던 공연인지라, 모두들 들 떠 있었다. 나 또한, 그 날의 들 뜬 마음을 간직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원장님은 모두를 자리에 앉히고, 마이크를 잡으셨다. “공연을 준비해준 분들이 오면 다 같이 큰 박수 쳐드리는 거 잊지 마세요.” “네!” 모두가 그렇게 외치자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내 옆에 앉으셨다. 굳게 닫혀 있던 휴게실 후문이 열리고, 모두의 눈이 그 곳으로 집중 되었다. 낫 익은 교복에 낫 익은 얼굴들. 모두 잊었다고 장담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굳어진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날 보지 못했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아이들의 연주는 시작되었다. 나의 빈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홀로 서 있는 스탠드 마이크뿐이었다. 연주가 끝이 나고, 모두들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었는지, 난 멈춰버렸는데... “한경아.” “네?” “몸이 안 좋니?” 원장님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표정이 좋지가 않아.” “그냥 손이 조금 저려와서요.” 괜한 핑계꺼리가 된 내 손이다. 아이들의 연주는 총 5곡이었다. 그 5곡이 연주 되는 동안 난, 혹시나 날 알아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움켜잡고 공연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곡이 끝이 나고, 다같이 인사를 했다. “저희 아이들의 연주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 참 오랜만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연주를 마친 아이들은 차례대로 무대를 내려왔다. 이대로 마지막이다. 나는 아이들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때, 누군가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잠깐만요.” 하늘이었다. 후문 앞에 서 있던 아이들도 하늘이를 쳐다봤고, 휴게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하늘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실, 저희 음악단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도망 가 버렸습니다.” 하늘이의 이야기, 내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그 애가 원망스럽고 싫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빈 자리가 지금은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하지만 내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늘이의 말이 가슴에 담겼다. “그 아이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하늘이는 고개를 떨 구며 잡고 있던 마이크를 놓았다. 그 때, 무대로 지유가 올라왔다. “만약 이 곳에 그 아이가 온다면, 저희에게 연락해주세요. 그 아이의 이름은 강한경이라고 하고요. 열일곱 살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 이름이 거론되자,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손잡이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중. 정말 손에 쥐가 나버렸다. 그래서 잡고 있던 의자손잡이를 놓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한경아!” 원장님은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입에서 피가 난다. “한경아. 괜찮아? 피가...” “괜찮아요.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나는 원장님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한...경아.” 지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지 마. 그냥 걸어 가. 마음을 다그치고 다그쳤다. 하지만 지유의 부름에 그만 울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그 아이들에 대한 내 마음을 짓누를 수는 없나 보다. 별의노래 제 26화 아주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잠깐 내린 소나기였지만, 땅을 적시기엔 충분했다. “왜 모른 척 한 거야?” 아이들과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근데 가슴이 너무나 답답해져왔다. “왜 우리를 보고도 아는 척 안한 거야. 말 좀 해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은, 아직은 날 보여주고 싶지 않아. 두 눈을 질끈 감고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렇게 옷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누군가가 감쌌다. 그 손을 보자 숨겨왔던 감정이 모두 들어나고 말았다.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내 손을 잡아준 건 바로 선생님이었다. “왜 말하지 않았어. 너한테는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선생님.” “믿어. 절대로 너를 그렇게 보내지 않을 테니까 우릴 믿어 줘.” “그래. 이 바보야.” 선생님의 말에 내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믿고 있어. 모두를 믿고 있어. 하지만 나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질까봐 두려워. “한경아. 우리 같이 돌아가자. 응?” 주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알았다고 당장이라도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었다. 내 대답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앞으로 힘들어질 테니까. “한경아.” “강한경.”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러올 때 마다 가슴이 점점 더 떨려왔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미안해.” 단지 그 말만 하고 난 뒤, 그 곳을 뛰쳐나왔다. 다시 기억하고 싶어질 까봐,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까봐. 지금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일어설 수 없는데, 일어서고 싶어질 까봐 두렵다. 밖은 잠깐 내린 소나기 때문에 그런지, 여름 날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선선했다. 하늘을 보니까 다시 비가 내릴 것 같다. “강한경.” 간신히 눌러 놓았던 마음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단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마음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겠다고 한 건 너였잖아.” 하늘이의 말에 난 고개를 숙였다. 어떤 말을 듣던지 모두 다 체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또 다시 그 아이처럼 하늘이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니까. “니가 한 약속이었어. 떠나지 않겠다고.” 그랬었다. 내가 그렇게 약속했었다. “...그 것도 알아? 그 아이의 입장을 대신 말했었던 거.” 모두에게 짐이 될까봐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그 아이에 대한 내 생각. 나는 애써 정원에 서 있는 나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어쩌면 나도 그 아이하고 다른 게 없을지도 몰라. 아니, 똑같을 거야.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보기 싫은 마음은 같으니까.” 하늘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날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하늘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더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말을 하면 할수록 구차한 변명 같아질 것 같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발걸음을 시작했고, 하늘이에게서 멀어졌다.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다. “...좋아해.” 내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난 돌아서서 하늘이를 쳐다봤다. “널... 좋아해.” “뭐?” 그 말이 무슨 뜻인 걸까? 하늘이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니가 없어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더 이상 날 귀찮게 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어. 근데, 시간이 갈수록...” 하늘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그 날 저녁.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이 곳에 남아주었다. “여기 생활 어때?” 벤치에 앉아 있던 내 옆에 지유가 앉았다. 난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편해. 좋은 곳이고.” “다행이다. 좋아 보여서.” 지유는 소리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 수 있었다. 지유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다행이야.” “지유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혹시나 니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걱정했다고.” 처음이었다. 지유가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란 바보 같은 사람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슬퍼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해져서. “아주머니, 너 때문에 하루도 제대로 잠 못 주무셨어.” 지유의 입에서 나온 엄마의 말. 난 고개를 떨구었다. “잘... 지내?” “아니. 많이 마르셨어.” 그 전에도 그리 통통한 못했던 엄만데, 많이 말랐다는 말에 눈물이 나왔다. “그만하자.” 지유가 내 손을 잡았다. “지유야.” “힘들었잖아. 여기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해도, 너도 느꼈잖아. 허전하다는 거.” 지유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이곳은 이별을 하는 곳이었다. 함께 지내왔던 유리가 먼저 떠나버렸고, 하나 둘, 이별을 해왔다. “돌아가자. 응?” 지유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단지 눈물만 계속 흘릴 뿐이었다. 별의노래 제 27화 비가 그치고 뜨는 해는 다른 날보다 더 빛이 난다. 그래서인지 오늘 뜬 해는 너무 눈부시다. “그동안, 정말 너무 감사했어요.”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하니까, 서운하네.” 원장님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참 따뜻하다. “꼭 유리 몫까지 건강해져야해. 알았지?”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저녁에 지유의 말을 따라,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엄마도 다시 보고 싶어졌고, 학교도 다시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럴게요. 꼭 다시 건강해질게요.” 유리 생각을 해서 그런 걸까?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내 씩씩한 척 웃어 보였다. 한새와 찬희가 짐을 옮겨주었다. 나를 부축해주는 건 주미와 미애였다. 선생님은 원장님과 짤막한 인사를 하고 난 뒤에야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린다. 모든 게 달라진 기분이다. 이제는 아프고, 의지해야만 살 수 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더 줄어들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이렇게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난 복이 참 많은 아이이다. 이렇게 날 다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하느님. 날 버리지 않아 주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오랜만에 꾸게 된 아빠의 꿈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내가 떠나게 된다면, 그 땐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까? “한경아.” 잠결에 들려오는 주미의 목소리. 나는 감겨있던 눈을 떴다. “다 왔어.” 주미가 활짝 웃어 보이며 내 앞에서 비켜주었다. 정말 다 와 있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그리웠던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곳.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있는 집이었다. 지유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난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아직도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걸까? 내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다. “한경아.” “누를 수가 없어. 이상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지유가 내 손을 붙잡았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원망하는 마음도 이제 다 정리하고 다 다시 시작해.” 지유와 함께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는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야윈 걸까? 보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보자마자 난 울어 버렸다. 수척해진 얼굴에 많이 말라 있었다. “하, 한경아.” 엄마의 눈에도 나처럼 눈물이 맺혔다. 나를 품에 앉은 엄마. 따뜻했었던 온기는 모두 사라지고, 몸이 차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 너무 미워 죽겠다. 나를 속여서가 아니라, 이렇게 날 미안하게 만들어서. 그 날 저녁. 아이들과 선생님이 돌아가고 난 뒤, 난 깊은 잠에 빠졌다. 졸리기도 했지만 엄마와의 이야기를 조금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야 너무나 많다. 하지만 지금은 삼키기로 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 아파있는 엄마였으니까. 이불을 목까지 꼭 덮은 난, 잠에서 깨어 있었다. 침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일어서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하게 다시 돌아줘서 정말 다행이야. 혹시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천만 다행이야.” 걱정했을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나에게 한 거짓말 때문인 걸까? “다 말해주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진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엄마의 말에 난 눈을 크게 떴다. 모든 걸 다 말해주겠다는 엄마의 말.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서서 방을 나가려던 찰나, 누워 있던 난 일어나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진짜 말해 줄 거야? 거짓말 말고, 진짜 이야기 해 줄 거야?” 정말로 듣고 싶었던 이야기. 내가 이 병에 걸리게 된 것도, 그리고 아빠가 진짜 어떤 삶은 살다 갔는지. 그 진짜 이야기를 너무나 듣고 싶다. 그러면 조금은 엄마에게 있던 원망이 사라질 것 같다. “한경아.” “말해줘. 엄마. 제발 말해줘.”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침대에서 내려 온 나는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 “다 나 때문인 거야. 모든 게 다...” 바보 같은 우리 엄마. 왜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아니야. 엄마 때문이 아니야. 다 나 때문인 거야.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 모두가 조금은 덜 아팠을지도 몰라. 그러면 난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내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야. 어쩌면 하느님은 그래서 날 이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들 곁에서 짧아도 행복하게 살아보라고. 별의노래 제 28화 볼에 흐른 눈물이 다 마르고 난 뒤, 그제야 엄마는 입을 떼었다. “모든 게 거짓말은 아니었어. 니 아빠는 정말로 착한 사람이었던 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빠는 참 따뜻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니 아빠를 알았던 건, 음악단에 들어갔을 때였어. 그리고 점점 좋아했고, 결혼도 하게 되었지. 결혼하기 전에 알고 있었어. 니 아빠가 너와 똑같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래도 좋아했으니까, 내가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떠나지 않았어.” 결국, 그렇게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나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니 아빠는 니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 그 병으로... 젊은 나이에 떠났어.” 나와 같은 병에 걸렸던 아빠는 죽기 직전까지도 위문공연과 봉사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아빠는 점점 걸음이 불편해졌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했고, 엄마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왜 속였어. 왜 날.” “두려웠어.” “왜...” “너마저 그렇게 떠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두려웠어. 또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싫었고, 그 이후로 살아갈 나도 너무 불쌍했어.” “하지만, 차라리 사실을 말하지.” 엄마는 고개를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방은 조용했고, 엄마의 목소리는 내 귓가로 전해졌다. “니 아빠를 따라 세상을 떠나려고 했었어. 더 이상 살기 싫다고. 하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선물, 그건 바로 나였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남겨 준 유일한 가족. “그래서 널 끝까지 지켜주기로 했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내지 말자고. 말하면 다 끝날 것 같았어. 미리 알면 남아있던 희망마저 놓아버릴 까봐.”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날 속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움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래도, 날 사랑하니까. 그랬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엄마.”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엄마를 조금만 이해해줘.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떠나는 걸 더 이상은...” 엄마는 결국 참던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눈물을 본 난, 엄마를 안았다. 등을 토닥거리는 내 손이 엄마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해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하도록 노력할게. 날 사랑해서 그런 거니까. 다 이해할게.” 한참을 그렇게 엄마는 내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울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가 내 품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운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다 쏟아내는 것 같았다. 기대고 싶었지만, 제대로 기대지 못했었으니까. “내가 미안해.” 난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엄마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라도 엄마랑 오랫동안 살아야 할 텐데. 하느님은 참 나쁜 사람이야. 엄마를 너무 아프게 해.” “...한경아.” “나 매일 기도할게. 하느님한테, 나 좀 늦게 데려가 달라고 기도할게. 그러면 들어주겠지. 하느님도 들어주실 거야.” 하느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내가 일찍 떠나게 된다면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엄마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을 수 있도록. 친구들과 노래할 수 있도록. 너무 오래 시간을 끌지 않을게요. 그저 날 기억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 그리고 내가 떠나도 지금보다는 덜 아플 시간만. 그만큼이면 좋아요. 그러면 하느님도 원망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기도드릴게요. “하나만 약속해줘.” “약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갑자기 떠나지 마.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덜 아프고 덜 슬프게.” 엄마의 말에 난 눈물을 참으려고 주먹을 쥐었다. 마음의 준비, 그리고 아픔과 슬픔. 어느 순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떠나기 전에 꼭 말할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내가 언제 눈을 감게 될 지, 그리고 언제 이별을 말할지. 그래도 말해주어야 한다. 엄마에게, 아이들에게 내가 떠난다는 걸. 하느님에게 받은 조금의 시간이 이제는 다 되었다는 것을. 내가 떠나기 전에 알려야 한다. 조금은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 때가면 떠나기 싫어질 것 같아서. 세상에 더 오랫동안 남고 싶어질 것 같아서 두렵다. 살고 싶어질 까봐, 더 숨쉬고 싶어질 까봐. 하지만 나한테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아니까. 욕심 부리면 나쁘게 변해버릴 것 같고, 오히려 시간이 더 사라지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 욕심 부리지 말자. 그저 내가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만 갖자. 그걸 로도 난 충분해. “그리고 꼭 웃으면서 갈게.” 내가 웃음으로 인해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마지막인 나의 모습이 밝게 기억 될 수 있도록. 지금만큼, 아니 지금보다도 더 환한 웃음을. 그 때 지어보이고 싶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일찍 떠난다고 하더라도, 엄마도, 아이들도 모두가 웃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조금은 덜 슬플 테니까. “그래. 꼭 웃으면서 떠나.” 엄마는 내 손을 맞잡았다. 오후와는 달리 엄마의 손이 따뜻하다. 마음이 포근해져서 그런가보다. 그만큼 엄마에게 나란 존재는 큰 것 같다. 멀리 있으면 같이 차가워지고, 가까이 있으면 따뜻해지는 그런 존재. 오늘에서야 정말 느낀 것 같다. 나한테 엄마란 존재는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별의노래 제 29화 이미 가을이 시작 된 것처럼 바람은 선선했다. 거리에 서 있는 나무들의 잎사귀도 모두 점점 붉게 변해가고 있었고 말이다. “몇 일 동안은 쉬는 게 좋지 않겠어?” 일어나자마자 교복으로 갈아입은 나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흔들며 엄마에게 말했다. “얼른 학교 가고 싶어. 너무 오랫동안 가지 못했잖아.” “그래도 몸이...” “괜찮아. 나 멀쩡해.” 엄마는 걱정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난 활짝 웃어 보이고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하는 등교라서 그런지, 내가 병에 걸리기 전인 입학 날이 생각났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학교로 향하는 난, 비록 몸은 약해졌지만 마음은 예전과 같았다. 학교에 도착한 난, 괜스레 하고 있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걱정은 입학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목격 했던 장면 때문이었다. 학교가 세워져 있는 땅을 사지 않는다면, 학교를 폐교 시켜버리겠다는 그 아저씨들 때문에. 내가 돌아왔을 때, 학교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을까봐.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고, 학교도 아직은 변함없이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한경아!” 날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바로 주미와 지유, 그리고 미애가 서있었다. “벌써 학교 나오는 거야? 몸은?” 지유의 걱정에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걱정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유에게도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진짜 괜찮아?” 미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미는 내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좋다. 이제 한경이도 있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은 눈물로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그 마음만큼 활짝 웃어 보이기로 다짐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난 뒤, 난 교무실로 향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어, 한경아.” “오늘부터 학교 등교하려고요.” 내가 환하게 웃어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힘들지 않겠어?” “네. 정말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혹시나 힘들면 말해야 한다.” “그럴게요.” 그렇게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내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도 중,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준이와 마주쳤다. 그 날도 그랬고, 오늘도 준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안녕. 준아.” 어색하게 손 인사를 해보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손을 내렸다. “...몸은.” 준이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 걸음도 왠지 편안해진 것 같고.” 내가 웃어 보이자, 준이는 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저, 저기. 준아!” 내 부름에 걸음을 멈춰 선 준이다. “하늘이하고 사이는...” 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두 사람은 아직도 냉전 중이었다.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있어.” 준이가 대답했다. “어?” 고개를 들고 준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준이는 더 이상 대답을 잇지 않고, 나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던 난 조용히 말했다. “다행이다.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겠어.” 교실에 들어서자,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땐, 그저 말만 많이 하는 아이들로 보였는데, 지금은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그리고 모두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강한경!” 그 때 한새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랐잖아.” “오늘부터 등교 한거야?” “응.” 내가 대답을 끝내자마자 한새는 나를 와락 안았다. 한새의 포옹에 나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날 기다려주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짧은 시간동안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다시 돌아 온 날 반겨주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고마워.”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왜 울어.” “그러게.” 눈물이 나왔지만 웃음도 나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새에게 물었다. “근데, 하늘이는?” “아까 밖에 나갔어.” “그래?” 나는 고개를 돌려 하늘이의 자리를 쳐다봤다. 가방이 있는 걸 보니 학교에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런데, 하늘이를 떠올리자 이틀 전의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오는 소나기를 맞게 된 그 날. 빗속에서 하늘이가 나에게 해준 말. ‘...좋아해.’ 그 말이 진심이었을까? ‘널... 좋아해.’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 ‘더 이상 날 귀찮게 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어. 근데, 시간이 갈수록...’ 지금 떠오른 건데, 그 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 같다. 이제는 하늘이에게 친구가 된 것일 테니까. 하늘이의 말이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지만, 그 날, 나를 보던 하늘이의 눈빛은. 날 친구로 생각해주는 눈빛이었다. 비록 내가 병을 갖게 되었고, 또 앞으로 점점 아파지겠지만. 내가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그리고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병도 이겨내고 싶다. 오랫동안 웃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별의노래 제 30화 오랜만에 하는 수업이라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공부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더니 그런 것 같다. 내가 아픔을 참느라, 고개를 숙이자 옆에 앉아있던 하늘이가 물었다. “괜찮아?” 하늘이의 걱정에 조금은 놀랐다. 그 날 이후, 하늘이는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 곳을 떠나기 전, 그 아이는 무척이나 차가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어, 어. 괜찮아.” 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다리는 아직도 아파오고 있다. 이를 꽉 물고 주먹을 쥐었다. 모두를, 그리고 하늘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나 때문에 모두가 방해 받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꼭 참아야 된다. “안 괜찮잖아.” “아... 아니야. 괜찮아.” “얼굴색이 안 좋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이다. “정말, 괜찮아.” 나는 하늘이의 눈을 마주보고 말했다. 하늘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난 그 시간을 참아냈다. 다음 시간이 이동 수업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하나 둘 교실을 나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었다. “줘.” 나에게 손을 내미는 한새. 괜찮다며 들겠다고 했지만 한새는 아니라며 책을 가져갔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걸음을 옮기자, 옆에 있던 하늘이나 나를 잡아 주었다. 하늘이의 걸음은 내 걸음보다 몇 배 이상 빠르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내게 걸음을 맞춰 주는 하늘이다. 그렇게 하늘이와 특별실로 향하는데, 아까 가고 있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한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저기, 담임선생님.”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담임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리들이. 아이들은 숨죽인 채 선생님과 그 무리들을 지켜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분명히 말했잖아. 이봐, 내 말을 까먹은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얼른 폐교 시키라고.” 반 아이들이 모두 듣고야 말았다. 난 이미 알고 있었던 폐교에 대한 이야기를. 그 때, 앞에 서 있던 아이가 비틀거리면서 살짝 열려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무리들과 선생님의 눈이 우리들에게로 향했다.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봤다. “애, 애들아.” 폐교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리고 빨개진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폐교가 된다니요.”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아이들의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무리들 중 한 사람이 말을 이었다. “이봐, 선생. 이번 연말까지 돈 준비하지 않으면, 이 학교 밀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그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돌렸다. “그건, 안됩니다.” “그럼 돈을 얼른 내놓던가.” 협박적인 그 아저씨의 말투.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교장선생님께서도 그렇게 해주시길...” “돈이 없으면 학교를 없애던지.” 말을 잇던 선생님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은 주먹을 질끈 쥐었다. “말도 안돼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한 아이의 반발이었다. “맞아요. 학생들이 학교인데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뒤 이어서 아이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그 아저씨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들은 살짝 주춤거렸다. 하지만 잘못 말한 건 전혀 없다. 단지 학교를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걸어와 말했다. “정 그렇게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돈을 주던가.” “뭐라고요?” “이런 그지 같은 학교가 뭐가 좋다고..” 뒤에 서 있던 나에게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물컹거렸다. 그리고 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지 학교라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내 말에 그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우리들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한경아.” 선생님이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난 선생님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얘기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리고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이 곳을 욕하는 것을. “이 곳은 우리들이 추억을 간직하는 곳이에요. 아무리 낡고 좋지 않은 학교라고 해도, 적어도 우리한테는 소중한 곳이라고요.” 내 말에 그 아저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질만 부리다 결국 함께 온 무리들과 함께 나가버렸다. 아이들은 잘한 거라며 나를 칭찬해줬다. 그런데 내 눈에서 그만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하, 한경아.” 옆에 서 있던 하늘이는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행동에 당황스러워 하는 아이들. 그런데 어디선가 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모든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애들아.” 선생님은 미안한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왜 운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은 왜 운 것일까? 아마도 두려웠기 때문일 것 같다. 학교가 사라지면 모든 아이들은 헤어지게 될 것이다. 또 추억도 학교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추억 없이 살아갈 내일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우는 것 같다. Daum 카페인쇄하기 인쇄 [[　　로맨스]][가인] 별의노래 제 31화 ~ 에필로그 | 　　닷컴퍼옴완결 [퍼옴·화수A] | 조회 3463 | 2008/01/08 18:39:38 ＿＿＿＿＿＿＿＿＿＿＿＿＿＿＿＿＿＿＿＿＿ 닉네임 : 가 인 메일 : orwwor@hanmail.net 출처 : 우리들의요염한반란,여우팸 http://cafe.daum.net/cateyeghdus 팬카페 : http://cafe.daum.net/Lovegain 팸카페 : http://cafe.daum.net/cateyeghdus ￣￣￣￣￣￣￣￣￣￣￣￣￣￣￣￣￣￣￣￣￣ 별의노래 제 31화 학교가 폐교된다는 이야기는 전교생에게 알려졌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더 이상 선생님들에게 묻지 않았다. 자신들만의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도 학교는 소중한 곳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슬픈 것처럼 선생님들도 슬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른 날처럼 다시 수업을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가슴을 누르고 있는 기분이다. 방과 후, 잠시 음악실에 들렀다. 아이들은 모두 남아 있었다. “한경아, 얼굴이 밝지가 않아.” “어?” “맞아. 표정이 안 좋아.” 주미와 찬희의 말에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런가보다. “근데 뭐 때문에 모인거지?” 준이의 말에 아이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를 이 곳으로 부른 건 선생님이었다. 왜 음악실에 모이게 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음악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우리들은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더니,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모두... 알고 있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혹시 폐교에 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준이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준이의 물음이 맞았는지, 선생님은 고개를 숙였다. 밝던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번 해를 넘기지 못할지도 몰라.” 선생님의 말에 한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번 해가 넘어가면 학교가 정말 폐교가 될 지도...” “안돼요. 학교가 폐교 된다니요.” 미애는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진하늘.” 하늘이의 차분함이 못마땅한지 미애는 하늘이를 노려보았다. “학교가 폐교된다는데, 지금 뭘 하는 게 중요해?”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하늘이의 말에 미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해. 학교를 지키려면 그 방법밖엔 없어.” 그 말에 공감을 한 듯 한새와 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미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럼 저희가 해야 하는 건 뭐예요?” 선생님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선생님.” “...공연을 하는 거야.” “공연이요?” “이번 연말에 음악회를 열어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기부금을 받는 거야.” 음악회라는 말에 아이들은 모두 집중했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럼 연말까지는 안전한 건가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 때 까지는 버텨야겠지.” 선생님은 말을 끝낸 뒤, 고개를 숙였다. 난 입술을 꽉 깨물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해요. 우리 음악회 해요.”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또한 우리 학교에게 마지막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음악회.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 우리 하자.” 지유 역시 나의 의견에 찬성했다. 아이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모두가 음악회를 하자며 외쳤다. 선생님은 활짝 웃어보였다. 그렇게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우리들은 하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지유랑 주미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음악회 얘기로 가득했다. “너무 좋은 것 같아. 연말에 음악회라는 거.” “맞아. 음악회 하자고 하길 잘 한거 같아.” 그렇게 아이들과 웃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그 때, 다리가 갑자기 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멈추자 지유와 주미도 걸음을 멈췄다. “한경아. 왜 그래? 아파?” “아, 아니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던 난 뒤뚱거리며 다시 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리가 또 저려온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옆에 있던 지유와 주미는 쓰러진 나를 부축했다. 무릎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경아. 괜찮아?” “피가 많이 나.” “...괜찮아.” 나는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지만 울지 않았다. 강해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집까지 지유와 주미의 도움을 받고 걸어왔다.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두 사람은 가버렸다. 난 그 두 사람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애들아.”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 난, 마당을 쓸고 있던 엄마와 마주쳤다. “한경아. 학교 갔다...” 엄마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한경아. 무릎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엄마는 집으로 들어가 약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손수건으로 내 무릎을 닦아주었다. “괜찮은 거야? 어쩌다가...”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내 무릎에 약을 발라 줄 뿐이다. 그런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앞으로 더 이런 일이 많아 질 텐데. 엄마, 미안해요. 앞으로 더 많이 아파질지도 몰라. 노력할게. 나도 아파지지 않게 노력할게. 한동안 엄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이미 많이 병이 진행 된 걸까? 내 다리는 굳어져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는데, 이제는 웃을 수 있는데, 왜 내 마음만큼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 걸까? 예전처럼 걷고 싶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만, 그냥 조금만 더 평범한 사람들처럼 걷고 싶다.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걷고 싶다. 별의노래 제 32화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고, 어느덧 나뭇잎들도 떨어져가고 있다. “바람이 차. 들어가자.” 엄마는 내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밖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배고프지? 점심 먹어야겠다.” 엄마의 물음에 나는 살짝 웃어보였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훨씬 지나갔지만,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 아침을 그리 많이 먹은 것도 아니었고, 또한 다른 것을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식사량이 줄어들었고,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죽을 끓여야만 한다. 그래도 그나마 소화가 잘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먹기 싫다고 하고 싶지만,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말을 삼켰다. 혹시나 내가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하루도 마음 편치 않은 엄마가 안쓰럽기 때문에. 엄마가 늦은 점심을 준비할 동안, 난 비가 내리고 있는 창 밖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건 자전거였다. 내 목표였지만, 이루지 못했던 목표. 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절대로 안 된다며 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소파에서 일어난 난 어깨에 걸쳐있던 담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현관으로 걸어갔다. 비바람이어서 그런지 꽤 쌀쌀하다. 신발을 신은 난 문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짝 열었다. 다행히도 엄마가 듣지 못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는데, 비가 오고 있다는 걸 깜빡 잊었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들어간다면 엄마에게 걸리고 말 것이다. “괜찮아. 비 조금 맞는다고 무리가 오지는 않을 거야.” 주먹을 꽉 쥐고선 자전거가 있는 창고로 향했다. 넘어진 이 후 고치지 않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멈춰서 있던 난, 자전거 옆으로 걸어갔다. 부서져있는 자전거. 입술을 깨물고선 자전거에 올라탔다. 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겼다. 하지만 타고 싶다. 내가 폐달을 밟자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창고 안에 있던 자전거는 비가 내리고 있는 마당으로 나왔다. 비틀거리고 춥지만 기분은 너무나 좋다. 그렇게 마당을 돌며 가을비를 맞았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자전거를 멈추면 그대로 다리가 굳어버릴 까봐. 그래서 자전거를 멈출 수 없었다. 그 때 마당의 가장자리를 돌고 있던 난, 큰 돌에 바퀴를 부딪치고 말았다. 제동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에, 바퀴가 멈춰지지 않았다. 결국 대문 앞 계단 밑으로 굴러버렸다. 그대로 쓰러진 난 일어서지 못했다.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내 위를 자전거가 누르고 있었다. 쓰러져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급격히 체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경아!” 그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목소리.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경아.”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손. 그건 바로 엄마의 손이었다. 엄마는 내 위에 있던 자전거를 치웠다. 그리고 들고 나온 담요로 나를 덮어주었다. “엄마...” “왜 그렇게 바보 같아. 이렇게 위험한데...” “나, 걷고 싶어.” 엄마는 내 말에 대답이 없었다. 새파랗게 변한 내 입술. “마음 놓고 걸어 보고 싶고, 자전거도 타고 싶어.” “한경아.” “다른 사람들처럼 걸으면 안 될까? 나도 달리고 싶어.”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나를 껴안았다. 엄마의 품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평범해지면 안 되는 걸까?” “...한경아.” “내가 왜 이 병에 걸린 건지 모르겠어. 왜 하필 나인 건지 모르겠다고.” 원망하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를 원망했다. “미안해. 엄마가 다 미안해.”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비가 더 거세지고, 난 추위 속에서 말했다. “강한경으로 계속 살고 싶어.”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안아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 날 저녁, 난 높은 열과 급격히 떨어진 체력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더 이상 다리만이 아닌, 몸 전체로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본 엄마의 모습. 내 손을 잡고 놓지 못하는 엄마. 정말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 혼자만 힘들고,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했다. 내가 힘든 만큼, 내 주변 사람들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정말 난 너무 바보 같다. 침대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난,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엄마. 미안해서 난 눈을 감았다. “제발...”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엄마의 말이었다. 별의노래 제 33화 병원에 도착한 난 응급실로 향했다. 의식을 찾지 못했고 숨소리조차 미세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비를 맞은 게 화근이었다. 자전거를 타겠다며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나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다음날. “엄마.” 깨어난 난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내 옆에 있어주었다. 오늘도 학교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선생님은 엄마의 연락을 받고, 병문안을 와 주었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미애의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걱정을 시키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진다. 엄마는 과일을 씻으러 선생님과 함께 나갔다. “아 참, 학교에다 놓고 온 게 있어!” “그래? 그럼 같이 갔다 오자.” 주미의 말에 한새가 같이 가주겠다며 나섰다. “그럼 우리 셋은 음료수 좀 사올게.” “응.” 지유와 미애가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초콜릿을 먹고 있던 찬희를 끌고 나갔다. 어쩌다 보니까, 우리 세 사람만 남았다. “뭐야...” 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쓸쓸해졌다. 결국 병실에는 하늘이와 내가 남게 되었다. “하늘아.” 나는 하늘이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늘이는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 날, 말해줬잖아. 나를 좋아한다고.” “그건...” 하늘이의 얼굴이 조금은 붉어졌다. “고마워. 나를 좋아해줘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널 많이 좋아해주지 못할 거야. 오래 살지도 못하고, 내가 숨쉬기에도 너무나 벅찰 거야. 그러니까...” “그냥, 있어줘.” 하늘이가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이를 바라봤다. “좋아해달라는 말 아니었어. 그냥 옆에서 계속 살아줬으면 좋겠어.” 살아달라는 하늘이의 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하늘아.” “병이 조금만 널 비켜갔으면 좋겠어.”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하늘이는 나에게 웃어보였다. 꼭 나를 위로해주듯이. 그런 하늘이에게 나 또한 웃어보였다. 해가 반 쯤 떨어지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할아버지의 부름에 진료실로 향했다. “어, 어서 오거라.” 할아버지는 나를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안돼, 진료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 언니가 들어오고, 끌고 오던 휠체어가 내 옆에 멈췄다. 난 휠체어를 쳐다보다가 할아버지에게 눈을 옮겼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었다. “할아버지.”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결국 입을 떼었다. “앞으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 거라.” “휠체어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바지자락을 붙잡고서 대답했다. “타기 싫어요.” “한경아.” “할아버지, 저 아직 걸을 수 있어요. 아직은 걷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잘할게요. 물리치료도 잘하고, 약도 꼬박꼬박 먹을게요. 그리고 엄마 말도 잘 들을게요. 그러니까...” 난 결국 참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이상 무리를 한다면, 병이 더 빠르게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타기로 결정했다. 엄마도 할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병실에 돌아 온 난, 엄마와 함께 퇴원 준비를 했다. 병실을 정리하고 엄마는 침대에 앉았다. “잘 선택한 거야.” “...걷지 못할 것 같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걸을 수 있어.”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잠시 동안 빌리는 거뿐이야.” “엄마.” “지금은 힘드니까, 조금 편해질 때까지 빌려 쓰는 거야.” 나를 위로해주는 엄마.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한경아. 우리 마음을 조금만 편하게 갖자.” “엄마.” “그래야지, 병도 금방 나을 수 있을 거야.” 엄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만 편하게 갖자. 그러면 금방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야. 다음날, 나는 엄마와 함께 퇴원했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 온 집. 무언가가 또 낯설게 느껴졌다. 내 걸음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지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마음이 또 울적해졌다. “한경아, 뭐 좀 먹을래?” 엄마는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는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아니.” 하지만 나는 차갑게 대답한 채,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알았고, 또 엄마에게도 미안했지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점점 더 확실해져만 가는 내 불안감 때문에. 지금까지 느낀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다리로 걸을 수 있었을 때는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 믿음조차도 생기지가 않는다. 별의노래 제 34화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이 무너질 때 즈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날. 바로 나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다. 하지만 너무 힘든 생활 때문일까? 그렇게 기다리던 고등학교의 첫 생일을 잊고 말았다. 지금은 병과 싸워 이겨 내야하기 때문에, 한가로이 생일이라며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휠체어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열심히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하지만 걸음을 걸을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두 배의 힘이 들었다. 그래도 모두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선택이니까. 휠체어를 탔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갖는 다는 건, 내가 더 이상 걸음을 걷지 못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휠체어를 타고 처음 등교를 하기로 한 날. 나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씩씩하게 말했다. “학교 다녀올게.” 그리고 바퀴를 움직이는 순간, “엄마가 데려다 줄게.”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지유랑 주미가 오기로 했어.” 엄마는 기운이 없는 표정으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여진 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엄마가 주는 선물이야.” “갑자기 무슨 선물?” 엄마는 내가 생일을 잊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고개를 흔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학교에 등교할 때까지도 내 생일 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유와 주미가 내 등교를 돕기 위해 집으로 찾아왔다. “강한경, 생일 축하해!” 주미와 지유는 작은 곰 인형을 선물로 내밀었다. “어? 생일?” “오늘 니 생일이잖아. 몰랐어?” “뭐야. 당사자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그럼...”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선물이라고 준 상자. 바로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었다. “강한경, 이 바보.”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기다리던 열일곱 번째 생일이 오늘이다. 몸이 나빠지니까 기억력도 나빠진 걸까? 그렇게 기다리던 생일인데. “생각해보니까 그렇구나. 요즘 통 생각 못하고 있었다.” 내 말에 지유는 살짝 머리를 때렸다. 그러더니 주미가 옆에서 손을 번쩍 올리고 말했다. “아 참, 또 놀랄만한 게 있는데.” 놀랄만한 일이 또 있다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뭔데?” 주미는 지유에게 눈빛을 주었다. 그랬더니 지유는 중대발표라도 하는 냥 헛기침을 몇 번 하기 시작했다. “놀라지 마. 우리 모두가 니 생일선물 준비했어.” 지유의 익살스러운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생일을 알고 있을 줄도 몰랐을 뿐더러, 생일선물까지 준비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모두가?” “응. 하지만 그 모두가 누구인지는 비밀이야.” 음악단 아이들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볼까?” “오케이!” 지유가 휠체어를 밀기 시작하자, 앞으로 걸어가던 주미가 내 눈을 가렸다. 어떤 선물일지 너무나 궁금하다. 학교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지만, 지유와 주미는 궁금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나에게 선물을 숨겼다. 그렇게 얼마나 휠체어가 움직였을까? 지유가 끌던 내 휠체어가 멈춰 섰다. “도착했어.” 주미는 지유의 말과 동시에,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 또한 계단의 한쪽을 비탈길로 만든 흔적이 보였다. “선생님. 애들아.”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활짝 웃어주는 많은 아이들 앞에서 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울지 않고 웃어보였다. “생일 축하해. 한경아!” 모두가 그렇게 외쳤다. “정말, 고마워.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서 모두가 희생해주었다. 나라는, 강한경이라는 사람을 위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었다. 이 고마운 마음을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미안하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열일곱 번째 생일. 너무나 값진 순간이 될 것이다. 절대로 잊어서도 그리고 지워서도 안 되는 그런 소중한 추억. “꼭 병, 이겨내길 기도하마.”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학교가 어렵다는 걸 알았고, 그만큼 학교 예산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모두들 나를 위해, 돈을 모았고, 이렇게 선물을 해주었다. “네. 꼭 건강해질게요. 그래서 모두하고 같이 학교를 위해서 힘쓸게요.” “그러자. 꼭 그 약속 이루자.” 교장선생님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이렇게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내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고 있었다. 병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그리고 이 사람들과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해줬고 말이다. 하느님,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을 한동안 많이 원망하게 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너무나 귀중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해준 것처럼, 나도 이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이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줄 때까지만. 날 도와주세요. 별의노래 제 35화 하루 종일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모두가 내가 태어난 이 날을 축복해주었고,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자.” “이게... 뭐야?” 하늘이가 나에게 내민 것은, 작은 목걸이 펜던트였다. “건강해지라고 주는 선물이야.” “...하늘아.” “꼭 예전처럼 나 귀찮게 하는 강한경으로 돌아와 줘.” 하늘이의 말에 나는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고마워. 잘 간직할게.” 나는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그 때, 하늘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휠체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살짝 닿은 하늘이의 입술.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가슴은 두근두근 거렸다. 하늘이는 금세 입술을 떼었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왜 이렇게 뛰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게 사랑인 건지도 잘 모르겠다. 첫 키스,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날 저녁, 엄마는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했다며 나에게 자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활기찬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진짜 많다!” “자, 어서 앉자.” 나는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엄마가 존경스러웠던 것들 중 한가지 이고 말이다. 요즘 통 소화가 되지 않아서, 잘 먹지도 못했던 나를 위해 엄마는 되도록이면 소화가 잘 되는 음식들만을 만들었다. 그 노력에 나는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엄마는 과일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난 홍차를 타가겠다며 엄마를 먼저 내보냈다. 홍차 두 잔을 탄 나는 쟁반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휠체어를 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과일을 깎고 있는 엄마 옆에 멈췄다. 엄마는 과일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다음주에 여행가자.” 엄마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물었다. “갑자기 무슨 여행?” 나는 쟁반 위에 올려져 있는 홍차를 엄마에게 건넸다. “그냥. 겨울바다도 괜찮고, 산도 좋고.” “엄마.” “아, 휠체어 때문에 안 되겠다. 그럼 가까운 곳으로 갈까?” 들뜬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였지만, 왠지 모르게 다급해 보였다. 홍차를 먹던 난,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엄마, 내가 만약에 세상을 떠난다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말했다. “한경아. 그런 말 하지 마.”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니 생일이잖니. 오늘만큼은 병도 잊고 예전처럼 그렇게 지내자.” “오늘이 아니면 다음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난 엄마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하늘이랑 가장 가까운 곳에 나를 뿌려줘. 해도, 달도, 별도, 그리고 구름도 있으니까. 외롭지 않게 그 곳에 나를 뿌려줘.” 갑작스러운 나의 부탁에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슬퍼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휠체어를 침대 바로 옆까지 가게 한 뒤, 침대에 올라가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팔에서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올라서려는 순간, 굳어진 팔 때문에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열이 나는 것 같다. 내가 바닥에 쓰러진 소리에 거실에 있던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한경아!” 결국, 또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요즘 들어서 병원에 자주 다닌다. 좋지 않은 습관인데.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날 찾아 온 할아버지. 나는 벽에 몸을 기대고선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좀 괜찮아졌니?” “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하고 싶었던 말을 이었다. “한경아. 앞으로는 병원에서 생활 하 거라.” “네?” “계속해서 그렇게 무리를 하다보면, 니 생을 더 단축하는 것과도 같단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입원하라는 말씀이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앞으로는 학교에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음악단 생활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생을 단축하고 싶지는 않다. 잠시 동안만 입원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예전처럼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다. “잠깐만이면 되죠?” “...그래.” “그럼 입원할게요. 더 살고 싶으니까.”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조심해야하는 사항을 알려준 뒤, 병실을 나갔다. 병실에 혼자 남은 난, 엄마가 들고 온 잠바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낮에 하늘이에게 받은 펜던트를 꺼냈다. ‘꼭 예전처럼 나 귀찮게 하는 강한경으로 돌아와 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살아볼게. 그렇게 돌아갈 수 있도록...” 펜던트를 쥔 손을 가슴에 갖다 댔다. 많이 살고 싶어졌다. 살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주기는 너무나 싫다. 살려고, 숨 쉴려고 노력해야지. 그래서 그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지. 별의노래 제 36화 겨울은 다른 해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왔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날씨는 몰라볼 정도로 추워져있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좋은 점은, 아프면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음이 조금 놓인 다는 점이다. 하지만 입원을 해서 나쁜 점은,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음악단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음악단에서 나오라고 제안했다. 목소리가 언제 안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다, 내 몸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병세는 더욱 더 악화 될 것이라며. 하지만 그 제안만은 듣지 않았다. 음악단은 나에겐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아빠를 떠올릴 수 있게 했고, 친구들과의 잊지 못할 인연도 만들게 되었다. 그런 음악단을 나오라는 것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약속했다. 되도록이면 목소리를 아낄 것. 그리고 잦은 외출은 삼갈 것을 말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오기로 한 날이다. “이게 몇 일 만에 보는 거지?” “한 3일 정도 된 것 같아.” 지유와 주미는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내가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다. 학교는 주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의 예산을 모으게 되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크나 큰 발전이다. 또 주미와 한새가 교제하게 되었다. 오래 전,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었기에, 그 소식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식에는 놀랐다. 준이와 하늘이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아이들의 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요즘 하늘이의 기분이 꽤 좋아보였다. “아, 우리 음악회 날짜 잡혔어!” 한새의 말에 나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언제?” “음, 12월 29일에 열기로 했어.” 나는 달력을 쳐다봤다. “그럼 얼마 안 남았네.”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들에 비해서 난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병실에 누워 책을 읽거나,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난 전혀 하는 일이 없었다. 노래를 자주 불러서도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 때문에, 노래 연습도 잘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내가 또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분위기를 밝은 쪽으로 전환시켰다. 병실에 많이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올 때마다 항상 나를 웃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 그 덕분에 아직도 병원에서, 웃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갔다. 날씨가 쌀쌀해서 목에 감고 있던 목도리를 입까지 올렸다. “벌써 한 겨울이네.” 휠체어를 조금 더 끌고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밖에 안 나가본 지 꽤 된 것 같다. 온통 밖은 겨울 준비로 한창이었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두꺼운 옷에 따뜻한 목도리와 장갑을 하고 있었고, 나무들도 모두 겨울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밖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고선, 휠체어를 끌고 향했다. 그 곳에는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나는 휠체어를 아이 앞으로까지 끌고 갔다. 바퀴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왜 울고 있어?” 내 물음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을 잃었니?” “...아니요.” “그럼 부모님을 잃어버렸니?” “아니에요.”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프다고 하잖아요!” 신경질 적인 아이는 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들어본 적도 없는 병인데, 그런 병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을 할 때마다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떨어졌다. “뼈가 굳어가는 병이래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탄대요.” 아이의 말에 나는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울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꼭 병을 처음 알았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아직은 너무나 어린 아이인데, 나보다 더 빨리 알아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런 아이에게 나도 같다면서 울기는 싫었다. 그래서 난 힘을 내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내 짐작대로 아이는 나와 같은 근 디스트로피 증에 걸렸다. 몇 일 전, 엄마와 함께 병원에 오게 되었고, 오늘 그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언니는 어디가 아픈데요?” 아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너랑 같아.” “저, 정말요?” 어느새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은 아프면 다 성숙해 진대. 그냥 성숙해지기 위해서 아프다고 생각해. 그러면 아픈 것도 금방 잊을 수 있을 거야.” 벌써 몇 개월 전에 들었던 이 말. 지난 늦여름에 세상을 떠난 유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럼 나을 수 있는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나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병도 조금은 비켜갈 거야.” 아이는 내 말에 살짝 웃어 보였다. 그 때, 내 이마로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어! 눈이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나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올 겨울 첫 눈이었다. 병을 알고 나서, 첫 눈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마음. 하지만 눈을 보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있잖아요.” “응?” “계속 첫 눈을 볼 수 있겠죠?” 아이의 물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볼 수 있을 거야. 나도, 너도.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가도 볼 수 있을 거야.” 이렇게라도 이 아이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도록. 내가 첫 눈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던 것처럼, 이 아이도 자신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의노래 제 37화 그 날 저녁, 엄마에게 음악회 날짜가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는 정말 잘 된 일이라고 기뻐했다. “엄마, 그래서 말인데... 나 퇴원 하고 싶어.” 나의 당혹스러운 제안에 엄마는 웃음을 멈췄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병원에서도 잘 해왔잖아. 몸도 많이 좋아졌고.” “알아. 하지만 아이들한테 더 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엄마는 이불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잡았다. “노래하고 싶은 거니?” “응. 노래하고 싶어.” “니가 아파질지도 몰라. 그래도 하고 싶어?” “아파져도 좋아. 내가 모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 것 뿐이니까.”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 동안 그렇게 퇴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결국, 나의 의견을 따라 퇴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퇴원은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나의 설득을 통해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병원은 꼬박꼬박 와야 한다며 나에게 강조했다. 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번에 열리는 저희 음악회, 꼭 오세요.” 할아버지는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마. 꼭 가도록 노력하마.” 나에게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엄마, 할아버지, 요양원 식구들, 그리고 학교의 모든 분들. 나의 노래로 그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오늘부터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한다. 등교를 하는 것은 무리라서 하지 않지만,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쁘다. “일찍 와 있었네?” 먼저 도착해 있던 나를 보더니, 아이들은 모두 웃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는 잠시 접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예전에 첫 공연을 할 때 불렀던 곡을 연습하기로 했다. 지유의 지휘에 맞춰,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얼마 만에 불러보는 노래인지 모르겠다. 첫 공연 때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드디어, 입을 떼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다른 날과 다름없는 노래였다. 그런데 한 음, 한 음. 노래를 이어갈 때마다 목에서 무언가가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목소리가 예전 같지가 않다. 노래를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리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한경아, 왜 그래?” 아이들은 노래를 멈춘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으로 목을 감쌌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거야.’ 내가 처음 이 병을 알게 되던 그 날,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벌써 병이 그렇게 진행 된 건가? 그러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없다. 이미 목까지 굳어가고 있다면, 음악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주저앉자, 하늘이가 나를 부축했다. “괜찮아?” 하늘이의 물음에 나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그 날 연습도 나 때문에 얼마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모두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음악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던 중, 선생님과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나는 휠체어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내밀었다. “이게...” “초대장... 이에요. 요양원 식구들한테, 보내주셨으면... 해서요.” 말을 잇기가 너무나 불편했지만, 그래도 꼭 부탁드리고 싶었다. 직접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엄마가 바깥 외출은 삼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낼 수가 없다. “그래. 선생님이 보내줄게.” 선생님이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다행이다. 나를 대신해 편지를 붙여 주신 선생님. 몇 일 뒤, 나에게 요양원에서 답장이 왔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못 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건강이 많이 호전되거나, 아직은 거동이 가능한 식구들이 참석할거라고. 그 편지를 보자, 나는 힘이 났다. 나를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욱 더 열심히 노래해야겠다고. 그렇게 음악회가 열리기 하루 전까지, 우리는 더 많은 연습을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가끔씩 연습이 연기되기도 했다. 그 연기의 이유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마지막 연습이 있는 날, 이제는 하루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다른 날보다 더 이른 시간에 연습은 시작되었다. 그 날 역시 내 목소리는 떨려왔고, 중간에는 심지어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를 이해해주었고, 나도 증상을 참아보려고 애썼다. 연습은 다른 날에 비해서 더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래도 한 겨울이라 해가 짧기 때문에 일찍 헤어져야 했다. 하늘이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한 난,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아픔을 놓아버렸다. 엄마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선, 따뜻한 물을 수건에 적셔 이마에 올려두었다. 몸이 불덩이였고, 목소리도 미세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경아, 정말 괜찮은 거니? 병원 안가도 되는 거니?” “어. 괜... 찮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내일... 공연은, 꼭... 가야만 해.” 내일이면 모두가 기다릴 것이다. 약속했으니까. 힘들어도 참아보겠다고, 그리고 건강해지겠다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꼭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나를, 그리고 내 노래를. 가슴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별의노래 제 38화 날씨가 추워져서 옷을 많이 껴입었다. 특히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 바로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엄마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겠다면서, 나를 하늘이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잠깐만.” 하늘이는 휠체어를 멈추고 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자.” 하늘이는 주먹으로 가리고 있던 무언가를 내 손위에 놓아주었다. “이게... 뭐야?” 하늘이를 쳐다보고 있던 눈은 어느새 손으로 향했다. 내 손에 놓여진 것은 얇은 반지였다. “...하늘아.” 조금 더듬거리기 시작한 말투.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다. “노래 잘해. 그래서 꼭 학교 살리자.” 하늘이는 내 손에 반지를 껴주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그래, 잘 하자. 강한경! 마을에서 쓰는 강당에서 열리는 음악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하늘이와 함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5시부터 공연이 시작할 거야. 모두 잘해.” 선생님의 말에 우리들은 모두 힘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화이팅을 외치고 우리는 무대로 향했다.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드디어 무대에 올라섰다. 무대의 중앙에선 모든 사람들이 보였다. 동네 주민들, 내가 초대한 요양원 식구들, 할아버지 그리고 선생님. 엄마. 그리고 음악회는 시작됐다. 아이들의 연주는 너무나 좋았지만, 내가 중간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통에 조금은 속상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와 엄마는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총 20곡의 연주곡을 준비했기 때문에, 벌써 하늘은 검은 밤하늘이 되어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처음보다 숨이 가빠졌다. “괜찮아? 무리하는 거 아니지?” “어, 괜... 찮아.” 엄마는 나에게 물을 건넸다. 물을 마신 나는 웃어 보이며 휠체어를 끌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모두 끝까지 힘내라.” “네.” 우리들은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저, 하늘아.” 나는 하늘이를 불러 세웠다. 하늘이는 가던 걸음을 돌려 나에게로 돌아왔다. 난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뺐다. 그 목걸이에는 생일에 하늘이가 나에게 선물한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손에 껴 있던 반지를 빼 목걸이에 걸었다. “하늘아. 이거... 좀 맡겨줘.” “뭐?” “다시, 받을... 테니까.” 망설이던 하늘이는 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난 하늘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눈물이 흐르자 나는 얼른 보이지 않게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하늘이는 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올라 선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점점 더 나오지 않는 목소리.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더 들려주고 싶기 때문에, 아직 들려주지 못한 것이 있기에.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곡의 순서가 왔다. 난 가쁜 숨을 쉬며 미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에게 정말... 감사드... 립니다.” 마지막 노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미 목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다 끝난 것 같다.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가 없다.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함께 있어. 그대와.” 그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돌아볼 수가 없었다. 온몸이 이미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내 옆으로 다가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엄마의 노래에 따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나 그대의 가슴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들은 노래 중,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 이제는 정말 떠나도 될 것 같다. 모두에게 너무나 고맙다. 아이들의 연주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린다. 정말로 내가 떠나는 건가 보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도.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도 희미해졌다. 사랑해요. 나를 이제껏 숨 쉴 수 있도록 만들어줘서.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의 노래도, 나의 꽃도. 모두가 마지막이었다. 노래가 끝이 나고,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렇게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한경아. 너 아주 잘 했어.”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선 나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그 때, 내 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한경아?” 갑자기 강당이 조용해졌다. 웃고 있던 아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왔다. 엄마는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한경이가...” 지유는 놀란 나머지, 잡고 지휘봉을 놓쳤다. “약속했잖아. 학교 같이 지키기로.” 하늘이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당은 어느 덧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나의 죽음을 슬퍼했고,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그 날, 밤하늘의 별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내가 떠난 그 시간. 하늘에서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짧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줘서.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고, 사랑합니다. 별의노래 제 39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지만, 폐교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모두가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떠난 지 벌써 한 달하고도 열일곱 일이나 지났다. “이대로 그만 둘 거야?” 하늘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지켜달라고, 부탁했잖아. 마지막으로 우리한테 부탁했잖아.” 하늘이는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편지를 손에 쥐었다. ‘12월 29일. 우리가 음악회를 하게 될 날이지.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만약,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말아줘. 내가 미안해하지 않고 떠날 수 있도록, 웃으면서 나를 보내줘. 그리고 부탁이야. 내가 떠나더라도 학교를 지켜줘.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마지막 인사가 될 지도 모르지만, 모두와 함께 존재했던 날 잊지 못할 거야. 만약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별이 지는 그 날, 다시 돌아올게. 사랑해. 모두. PS. 지금까지 살게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가슴이 뛸 수 있게 해줘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두근두근, 나는 살아 있구나.' 주미는 결국 하늘이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우리의 추억이기도 하잖아.”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고, 슬프다. 그 날 저녁, 하늘이는 낯선 건물 앞에 섰다. 모두가 알지만 갈 수 없었던 곳. 바로 학교를 폐교시키기로 결정한 그들이 있는 곳이다. 하늘이는 그 곳으로 들어갔다. 그 시간, 집에 있던 준이는 낮에 하늘이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건, 우리의 추억이기도 하잖아.’ 하지만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그런데 준이는 망설였다. ‘우리의 추억을 제발 지켜줘...’ ‘한경이가 남긴 마지막 소원이니까...’ 친구이기 때문에. 결국, 하늘이를 따라 준이도 그 곳으로 향했다. 이미 하늘이는 홀로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었고, 옷은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싸웠다. “이 자식이!” 하늘이를 때리려고 하던 한 남자. 그 때, 문이 열리자 빛으로 인해 멈춰 섰다. “뭐, 뭐야!” 하늘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준이는 하늘이에게 걸어갔다. “너...” 하늘이는 준이가 온 것에 대해 놀라했다. 하지만 준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준.” “혼자 폼 잡으면서 날 뛰는 거 보기 싫으니까.” 준이의 말에 하늘이는 살짝 웃어 보였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 “알아.” 두 사람은 등을 마주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녀석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 두 사람은 그들과 맞서 싸웠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리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싸웠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학교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을 위해서 싸웠다. 하지만 두 사람의 힘으론 그들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지키지 못했다. 다리를 절며 밖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 하늘이는 조심스럽게 준이에게 말했다. “정준...” “왜.” “...다시, 친구 하자.” 하늘이의 말에 준이가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는 상처가 난 입술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원하던 대로... 다시, 친구 하자.” 하늘이는 준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준이는 하늘이를 바라보더니, 하늘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준이는 하늘이를 부축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학생들은 다음날 폐교식을 맞이해야 했다. 다음날, 마지막 등교를 시작한 학생들. 학교는 아침부터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은 오늘로 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슬픈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추억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 때문에. 폐교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름을 한명씩 부르며, 마지막 졸업장을 나누어주었다. 아이들 역시, 그 졸업장을 받았다. 울지 않던 아이들도, 그 날만은 울고 말았다.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 졸업장을 받아 들고서, 그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1학년 2반, 강한경.” 내 이름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별의노래 제 40화 겨울이 어느 덧 흘러갔지만, 아직도 추위는 가까이에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내 졸업장을 닫는 순간, “잠깐만요!”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돌아온 날, 모두들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조회대에 올라선 난, 교장선생님 앞에 똑바로 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은 놀란 나머지, 현기증을 일으키셨다.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온 것에 대해 많이 놀라셨나보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나에게 졸업장을 건넸다. 졸업장을 받고 조회대를 내려 온 난,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 자리에 놓여져 있는 국화 꽃다발. 나는 꽃을 들고 그 자리에 섰다. 모두가 놀라야 했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세상을 떠난 내가,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 온 지금. 이 일을 누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모두들 날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했다. 아직도 숨 쉬고 있는 나처럼, 그렇게 날 대해주고 있었다. 폐교식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들 학교에서 나가지 않았다.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가 않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경아.” “응?” “정말 돌아 온...” 지유가 나에게 물으려 하자, 하늘이가 말을 막았다. “우리, 밖에 나가자. 학교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 그래!” 한새는 웃어 보이며 아이들을 밀었다. 나 역시, 예전의 모습처럼 그렇게 웃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있지. 난, 학교가 너무 싫었었어. 근데, 너희를 만나고 즐겁게 학교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한새의 말에 모두들 웃어 보였다. 지난 날, 한새의 부모님의 반대에 우리는 공연을 했고, 그 덕분에 한새가 무사히 음악단에 들어올 수 있었다. 비록 얼마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한새는 그만큼 우리에게 소중한 친구였다. “나도 그랬어. 항상 웃지도 않았고, 성질만 부렸지. 하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어.” 미애를 처음 만났을 때, 무서운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었고, 한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애는 누구보다도 더 남을 배려하는 아이였다. “난 아무 생각도 안했던 것 같아. 초콜릿만 좋아했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심도 없었어.” 찬희는 말을 끝내고선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니가 연주하는 첼로소리가 얼마나 좋은데.” 찬희의 첼로 연주는 정말 듣기 좋다. 처음에는 그저 초콜릿만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녀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아이였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너무 더 좋아.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근데,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없으니까...” 주미는 끝내 참던 눈물을 흘렸다. 어릴 적부터 같이 해 온 주미. 마음도 여리고, 눈물도 많은 착한 아이. 나에겐 가족과도 다름없는 아이이기에, 나에겐 너무 소중한 사람이다. “난 계속 지휘 할 거야. 이번에,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는대. 그래서 도전해보려고. 우리의 열정을 담아서 꼭 이룰 거야.” 당차고 씩씩한 지유의 다짐. 지유라면 꼭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으니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기에. “다 포기 했었는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 잊지... 못할 것 같아. 지금까지의 추억, 그리고 너희들을.” 고맙다는 것을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준이. 어쩌면 준이이기에 가능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이와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끝내 그 일을 극복하고 다시 친구가 된 준이. 내가 바라던 모습을 보여줘서 너무나 고마운 아이이다. “그저 모든 게 싫었어. 소중한 사람을 잃고서 행복할 자신이 없었어. 근데, 다시 행복해졌어. 너희를 만났고, 친구가 될 수 있었고. 그리고...” 하늘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바라볼 뿐. 하늘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난다. 무뚝뚝하고 성의 없는 말에 혼자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늘이의 고백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고맙다. 사랑이라는 걸, 한 번 해 볼 수 있게 해줘서. 모닥불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난... 열일곱이었던 지금을 잊지 못할 거야.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고, 그리고 추억도 너무나 많아서.” 말을 잇던 난, 결국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아 보이면서 웃었다. “모두들, 정말 고마웠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고 싶었다. “...우리도 정말 고마웠어.” 아이들의 말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점점 희미해지는 내 몸. 그리고 떨어지기 시작한 별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다시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갈 수 있게, 모두의 얼굴을 가슴에 새길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렇게 난 별과 함께 지고 말았다. 별의노래 마지막 화 그 이후, 우리들은 다른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각자의 학업에 몰두하게 되었지만, 가끔씩 음악단 아이들끼리 모이기도 했다. 극히 드물었지만, 모이는 그 날은 한경이의 기일과 가까운 몇 일 사이였다. 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한경이로 인하여 인연을 끊지 않았다. 이미 6년이 지난 학교의 터에는 커다란 빌딩이 세워졌고, 마을 전체가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하지만 한경이가 살았던 그 곳만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그 아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한경아. 니가 세상을 떠난 후, 너의 엄마가 책을 출간하게 됐어.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니가 겪었던 병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지금은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야. 그리고 주미와 한새는 조만간 결혼을 할 예정이고, 지유는 곧 미국에서 있을 초청공연으로 바빠. 또 찬희랑 미애도 잦은 싸움을 하긴 하지만, 둘은 꽤 오래된 연인이 되었어. 정준, 그 녀석과의 사이도 예전에 비해선 몰라보게 달라졌어. 또 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야. 너에게 준 목걸이가 아직도 걸려 있는 거처럼, 나한테 언제나 니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니 몫까지 꼭 열심히, 살아남을게. 그래서 니가 피지 못한 꽃을 내가 대신 피울게. 그게 어떤 것이라도 말이야. 근 디스트로피 증이란? 골격근(骨格筋)의 진행성 위축과 근력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근육 자체의 질환으로서, ‘별의노래’의 한경이가 걸린 형은 데제린 형이라고 합니다. 데제린 형은 보통 12~14세에서 발병하게 되며, 거의 20세 이상으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합니다. 병의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질환이기 때문에 방치해 둘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별의노래’의 한경이의 경우에는 17세에 병을 알게 되었고,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몸의 근육이 파괴 되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도 본 병에서는 12세 전후로 의지하게 되지만, 한경이는 17세에 휠체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